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중(景中). 황섬(黃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기준(黃起峻)이고, 아버지는 오형장(五衡將) 황열(黃悅)이며, 어머니는 허용(許墉)의 딸이다. 동생은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 황정욱(黃廷彧)이다.
통사랑(通仕郞)으로 1561년(명종 1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에 임명되었고, 병조정랑으로서 『명종실록』 편수에 참여하였다. 1569년(선조 2) 정언에 임명되어 용궁현감 이종(李悰)을 탄핵하였으나 풍문에 의거한 탄핵이라 하여 한때 체차되었다가 다시 정언에 올랐다.
이후 1580년 삼척부사 및 파주목사를 거쳐 1587년(선조 20) 우부승지에 제수되었으며, 곧 승지에 올랐다. 삼척부사로 있을 때 『태조대왕선묘기(太祖大王先墓記)』의 기록에 태백산 노동(蘆洞)에 목조(穆祖)의 고비(考妣)의 능침이 있다는 설을 확인하기 위해 탐색을 벌일 것을 주장하여 조사를 벌였으나 확증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 해 5월 강원도로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선조를 호종하다가 평양전투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