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충선(充善). 영의정 황희(黃喜)의 7대손이며, 첨절제사 황섬(黃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부시정 황윤준(黃允峻)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 황박(黃博)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종유(李宗蕤)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6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저작·주서를 거쳐, 형조좌랑에 승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감사 송언신(宋言愼)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병조정랑이 되어 광해군을 호종, 경성부판관이 되었다. 난이 끝난 뒤 돌아와서 지평·장령·집의·사성·사간·필선·좌부승지·장례원판결사 등을 거쳐, 호조참의에 이르렀다.
1606년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정사인 형조판서 한술(韓述)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 때 난정의 조짐이 보이자 봉산군수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칭탁하고 나가지 않았다가 1618년(광해군 10) 벼슬할 뜻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