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좌부승지, 장례원판결사,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충선(充善)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7년(명종 2)
사망 연도
1626년(인조 4)
본관
장수(長水)
주요 관직
필선|좌부승지|장례원판결사|호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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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좌부승지, 장례원판결사,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충선(充善). 영의정 황희(黃喜)의 7대손이며, 첨절제사 황섬(黃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부시정 황윤준(黃允峻)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 황박(黃博)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종유(李宗蕤)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6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저작·주서를 거쳐, 형조좌랑에 승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감사 송언신(宋言愼)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병조정랑이 되어 광해군을 호종, 경성부판관이 되었다. 난이 끝난 뒤 돌아와서 지평·장령·집의·사성·사간·필선·좌부승지·장례원판결사 등을 거쳐, 호조참의에 이르렀다.

1606년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정사인 형조판서 한술(韓述)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 때 난정의 조짐이 보이자 봉산군수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칭탁하고 나가지 않았다가 1618년(광해군 10) 벼슬할 뜻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계곡집(谿谷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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