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 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시정부 요원 강태동(姜泰東)·이정규(李丁奎)와 접선하여 대한청년단 이름으로 된 격문과 임시정부포고문 제1∼3호를 평안·전라·경상도 등지에 살포하였다. 1920년 봄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 해 12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0년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에 반대하는 등 항일투쟁으로 일관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