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4월강화도 수비를 맡은 총제영의 중군으로 있었다. 동학농민군 토벌임무를 띠고 전라도에 파견된 초토사 홍계훈(洪啓薰)의 증원군 파견요청에 따라, 총제영병 4초(400명)를 거느리고 4월 19일 기선 현익호(顯益號)로 인천을 출발하여 4월 23일 법성포에 상륙하였다.
4월 21일 장성 황룡촌에서 벌어졌던 경군(京軍)과 동학농민군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며, 4월 28일 전주에서 홍계훈군과 합류하였다.
그 뒤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그 해 9월 동학농민군이 재기하였다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하여 수세에 몰리자 농민군토벌에 적극 나섰다. 이 해 겨울에는 태인현 종송리(種松里)에 숨어 있는 농민군 지도자 김개남(金開男)을 부하로 하여금 체포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