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유치균의 손자 유세영(柳世永)·유전영(柳田永)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재규(權載奎)의 서문, 권말에 정방엽(鄭邦燁)·정형규(鄭衡圭)의 발문이 있다.
5권 2책. 목활자본.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138수, 서(書) 51편, 권3·4에 잡저 5편, 기(記) 1편, 발(跋) 1편, 제문 19편, 묘지명 1편, 행장 3편, 권5에 부록으로 만사 24수, 제문 9편, 행장·묘지명·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 비분강개함이 전편에 나타나 있다. 「일야서화(日夜敍話)」에는 밤낮으로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계획하나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덕산도중(德山途中)」·「낙조(落照)」 등에는 세상을 피해 은둔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갑오춘문동비대요(甲午春聞東匪大擾)」는 동학란이 일어나자 국정이 어지럽고 외세가 호시탐탐 노리는데 백성이 이러한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망국의 조짐이라고 개탄한 것이다.
서(書) 가운데 최익현(崔益鉉)에게 올린 5편의 「상면암선생(上勉庵先生)」에는 학문의 방향에 대해 묻고 국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해 줄 것을 청한 내용이 있다. 「여이만구(與李晩求)」와 「답박정헌(答朴禎獻)」에서는 『논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공자의 깊은 뜻을 해설하였다.
잡저의 「자경(自警)」은 인간으로서 꼭 지켜야 할 사항을 열거한 뒤 지킬 것을 다짐한 글이다. 「호유기행(湖遊紀行)」은 1920년 최익현을 필두로 여러 선배를 배종해 호남의 명승인 무주(茂朱)·금강(錦江)·계룡(鷄龍) 등을 관상하며 시도 짓고 학문도 토론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열부김씨실록(烈婦金氏實錄)」은 유용균(柳龍均)의 처가 남편이 병사하자 뒤따라 자결한 일을 밝힌 글로, 풍속을 순화시키려는 의도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