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년(숙종 20) 조한영의 손서(孫婿) 임영(林泳)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임영의 서문이 있다.
11권 4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8에 시 500여 수, 권9에 잡저로 조(詔) 2편, 고(誥)·논(論)·제(制)·송(頌)·명(銘) 각 1편, 찬(讚) 2편, 치어(致語)·송서(送序)·서(序)·묘갈·축문·전(箋)·비답(批答)·교서·잠(箴)·책제(策題) 각 1편, 권10에 제문 18편, 권11에 소(疏) 18편, 봉사(封事)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일정한 시기에 지은 것들을 묶어 거처하던 곳의 명칭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무협록(巫峽錄)」·「서원록(西園錄)」·「연막록(蓮幕錄)」·「설교록(雪窖錄)」·「춘성록(春城錄)」·「여강록(驪江錄)」·「애만록(哀挽錄)」·「습유록(拾遺錄)」 등이 있다.
「서원록」은 12세 이후부터 벼슬하기 전까지 지은 것이 중심이지만, 그 뒤에 지은 것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저자가 명승고적을 답사하며 지은 시가 많은데, 금강산에서 지은 「비로월야(毗盧月夜)」·「숙정양사이수(宿正陽寺二首)」 등이 대표작이다. 「설교록」은 심양(瀋陽)에 가서 읊은 것이다. 「애만록」은 만사를 모아 놓은 것으로, 「인목왕후만사(仁穆王后挽辭)」를 비롯해 인조·효종·김상헌(金尙憲)·이식(李植) 등의 것이 실려 있다.
「서원록」에는 청나라의 내침으로 가족을 이끌고 피란할 때 지은 시, 난이 끝난 뒤 서울에 돌아와 그 감회를 적은 시 등 병자호란의 경험을 읊은 작품이 다수 실려 있다. 이로써 당시의 사회상과 전황, 그리고 청나라에 대한 저자의 태도 등을 알 수 있다. 「비병자(悲丙子)」는 오언 200구의 장편으로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종결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잡저 가운데 앞의 10편은 과제(科製)이다. 첫 번째의 「구현량방정직언극간지사조(求賢良方正直言極諫之士詔)」는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차지한 작품이다. 이밖에 우임금이 술을 싫어했다는 사실이 그가 치수한 공보다 크다고 논한 글, 한나라 광무제가 엄광(嚴光)을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했다고 가정하여 지은 글 등이 실려 있다.
「경진봉사(庚辰封事)」는 1640년(인조 18)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지은 1만여 언의 장편이다.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원병을 파견하고 원손(元孫)을 심양에 볼모로 보내라는 청나라의 요청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이 소로 인해 저자는 배청파(排淸派)로 지목되어 김상헌 등과 함께 심양에 잡혀갔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서원록」에 실린 일련의 시들과 함께 저자의 대청의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