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인조의 서녀이며, 어머니는 귀인(貴人) 조씨(趙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달라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하였다. 1647년(인조 25) 옹주 책봉과 함께 반정공신 김자점(金自點)의 손자 세룡(世龍)과 혼인하여 극진한 부귀를 누렸다.
1651년(효종 2) 김자점이 역모사건의 주범으로 처형되고 일가가 적몰되자, 귀인 조씨의 간상(奸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친며느리인 숭선군 이징(崇善君 李澂)의 부인 신씨(申氏)를 모해하는 데 동조하여 종을 시켜 갖은 악독한 일을 저지른 것이 탄로나서 폐서인(廢庶人)의 처분을 받고 진도에 유배되었다.
얼마 뒤 다시 통천에 안치되고, 이듬해 경기도 이천에 이배되어 위리안치되었다. 효종의 지극한 우애에 힘입어 죄인의 몸이면서도 몸이 아플 때는 의약품이 하사되었고 철이 바뀔 때마다 의복도 하사되었다. 1658년 효종의 특명으로 풀려나 서울로 돌아왔으나, 복호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