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언해본(諺解本) 훈민정음』이라고도 한다. 번역한 사람이나 번역된 연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세종 말년부터 세조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번역방식은 한문을 짧은 구절로 나누어 토(吐)를 달고, 한자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東國正韻式漢字音)을 표기하였으며, 그 아래에 두 줄로 한문의 자석(字釋 : 뜻풀이)을 한 다음, 그 구절 전체를 번역하였다.
한문본과 국역본은 그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어서, 국역본에는 원한문본에 없는 치음자(齒音字)에 관한 규정, 즉 한어(漢語)의 치음을 표기하는 한글의 치음자를, 치두음자(齒頭音字 : ㅈ ㅊ ㅉ ○ ㅆ)와 정치음자(正齒音字 : ㅈ ㅊ ㅉ ○ ㅆ)로 따로 제자해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이 첨가되어 있으며, 이 규정은 1455년(단종 3)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성통고(四聲通攷)』의 범례에도 들어 있으므로, 번역사업은 1455년 이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역본 훈민정음』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는 박승빈본(朴勝彬本, 현재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소장)이 알려져 있었으나, 정밀한 조사에 의하면 『월인석보』 책머리 부분을 따로 제책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빠른 국역본은 1459년(세조 5)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책머리에 실려 있는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다. 그 원간본은 서강대학교 소장되어 있고, 1568년(선조 1)희방사(喜方寺)의 중간본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