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경성전투 ()

목차
근대사
사건
1933년 한중연합군이 전개한 항일전투.
목차
정의
1933년 한중연합군이 전개한 항일전투.
내용

1932년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은 중국의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인 요령민중자위군(遼寧民衆自衛軍)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항전하기로 하고 한중연합군을 편성, 이듬해 5월 8일영릉가(永陵街)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패전한 일본군은 같은 해 6월 15일 양대령(楊臺嶺)을 넘어 흥경(興京)·청원(淸原) 지방으로 공격하여 왔는데,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조선혁명군은 총사령관 양세봉(梁世奉)의 지휘하에 1,000명의 병력으로 청원지방을 수비하고, 중국군은 1만 명의 병력으로 흥경성을 사수하도록 작전계획을 세웠다.

조선혁명군은 기습공격으로 비행기까지 동원한 일본군을 저지하였으나 중국군이 패전함으로써 남산성(南山城)으로 퇴각하게 되었으며, 이 전투에서 30여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참고문헌

『한민족독립운동사』4(국사편찬위원회, 1988)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집필자
신재홍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