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은 중국의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인 요령민중자위군(遼寧民衆自衛軍)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항전하기로 하고 한중연합군을 편성, 이듬해 5월 8일영릉가(永陵街)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패전한 일본군은 같은 해 6월 15일 양대령(楊臺嶺)을 넘어 흥경(興京)·청원(淸原) 지방으로 공격하여 왔는데,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조선혁명군은 총사령관 양세봉(梁世奉)의 지휘하에 1,000명의 병력으로 청원지방을 수비하고, 중국군은 1만 명의 병력으로 흥경성을 사수하도록 작전계획을 세웠다.
조선혁명군은 기습공격으로 비행기까지 동원한 일본군을 저지하였으나 중국군이 패전함으로써 남산성(南山城)으로 퇴각하게 되었으며, 이 전투에서 30여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