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달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후삼국시대, 고사갈이성의 성주.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929년(태조 1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박진훈 (명지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1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흥달은 후삼국시대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의 성주이다. 원래 견훤의 휘하에 있었지만, 927년(태조 10)에 고려 태조 왕건이 강주를 순행하기 위해 성이 있는 지역을 지나가게 되자 아들을 보내어 귀순하였다. 929년(태조 12)에 견훤이 고사갈이성에 대한 공격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하였다.

정의

후삼국시대, 고사갈이성의 성주.

가계 및 인적 사항

흥달(興達)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929년(태조 12)에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후삼국 시기에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聞慶) 지역에 자리한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의 성주(城主)이다. 원래 견훤(甄萱)의 휘하에서 고사갈이성의 성주로 지내고 있었지만, 927년(태조 10)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晉州)인 강주(康州)를 순행할 목적으로 그 경로상에 있는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되자 자기 아들을 보내어 귀순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성에 배치한 군사와 관리들이 모두 고려에 항복하였다.

흥달의 귀순으로 고려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忠州) 방면에서 경상도 지역으로 향하는 진군로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고려는 925년(태조 8)에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永川) 지역인 고울부(高鬱府)를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星州) 지역인 벽진군(碧珍郡)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더불어 흥달이 귀순하기 몇 개월 전에 고사갈이성에서 가까운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에 자리한 근품성(近品城)을 함락시킨 데 더해 고사갈이성을 확보함으로써 경상북도 일대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에 태조는 흥달에게 청주(靑州)의 녹읍을 하사하고, 토지와 집을 하사하여 치하였으며, 아들 준달(俊達)에게는 진주(珍州) 녹읍을, 웅달(雄達)에게는 한수(寒水) 녹읍을, 옥달(玉達)에게는 장천(長淺) 녹읍을 각각 하사하였다.

하지만 견훤의 후백제군은 곧바로 반격을 가하여 927년 9월에 근품성을 공격하여 불사른 데 이어 지금의 대구시에 자리한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을 대파하였다. 929년(태조 12)에 견훤이 고사갈이성에 대한 공격을 추진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흥달은 전투에 나가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다 오른쪽 팔 위에 멸망을 의미하는 ‘멸(滅)’이라는 글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병이 나서 10일 후에 죽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견훤의 군대가 매우 강력하고 잔인하였기 때문에 흥달이 견훤과의 전투에 나가기도 전에 마음에 병이 들어 죽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논문

  • - 김명진, 「고려 태조 왕건의 공산동수전투와 신숭겸의 역할」(『한국중세사연구』 52, 한국중세사학회, 2018)

  • - 박순교, 「신라 경애왕의 죽음과 고려 구원군 파병의 진위 문제」(『동아인문학』 38, 동아인문학회, 2017)

주석

  • 주1

    : 신라에서 고려 초기까지, 벼슬아치에게 직무의 대가로 일정 지역의 수조권을 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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