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하여 지추밀원사 등을 지낸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자겸(李資謙)이 국정을 농단할 때 인종에게 유신(儒臣)을 불러들여 경전을 강론하라고 거듭 청하였으며, 경천사(敬天寺)와 숭복사(崇福寺)에 대한 공사를 중지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폐단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우정언 석의정(石倚廷)이 외척을 탄핵하다가 귀양 가게 되자, 그 조치가 잘못되었음을 홀로 상소하였다. 그 뒤 우사간(右司諫)이 되었으며, 다시 예부원외 공부낭중 예부낭중 국자사업 직보문각대제(禮部員外 工部郞中 禮部郞中 國子司業 直寶文閣待制)에 임명되었는데, 모두 지제고를 겸하였다.
묘청(妙淸)을 극렬하게 탄핵하였으며, 이에 따라 묘청의난이 진압된 후 1136년(인종 14) 7월에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다. 이어 예부시랑 보문각학사(礼部侍郞 寶文閣學士)가 되었다가, 국자좨주 지도성사 국자감대사성 호 · ․예부상서 집현전학사 태자빈객(國子祭酒 知都省事 國子監大司成 戶․禮部尙書 集賢殿學士 太子賓客)에 임명되었다. 1139년(인종 17)에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였으며, 1140년(인종 18)에는 예부시(禮部試)의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인재를 선발하였다.
1147년(의종 1)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가 되었다가 다음 해에 도병마사(都兵馬使)를 거쳐 추밀원사 판비서성사(樞密院使 判秘書省事)에 임명되었다. 1150년(의종 4)에 수사공 좌복야 판비서성사(守司空 左僕射 判秘書省事)가 되었다. 1151년(의종 5)에는 보문각(寶文閣)에 새로 설치된 문첩소(文牒所)의 별감(別監)으로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임광묘지명(林光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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