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량(俊良)의 가계나 인적 사항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936년(태조 19) 9월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최후의 큰 전투이자 후삼국의 통일을 결정지은 전투인 일리천전투(一利川戰鬪))에서 보천군대장군(補天軍大將軍) 원윤(元尹)으로서 보병에 해당하는 보군(步軍)을 지휘하였다. 일리천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의 낙동강 지류로 비정되는데, 당시 태조 왕건(王建)이 지휘하는 고려군과 신검(神劍)이 지휘하는 후백제군이 일리천을 두고 대치하였다. 고려군은 중군, 좌군, 우군 등의 3군으로 편성되었으며, 예비 병력 격인 원병을 두었다.
준량은 보천군대장군 원윤 삼순(三順), 정조(正朝) 영유(英儒) · 길강충(吉康忠) · 흔계(昕繼) 등과 함께 보군 1만 명을 거느리고 우군에 해당하는 우강(右綱)에 소속되었다. 우강에는 대상 김철(金鐵) · 홍유(洪儒) 등이 지휘하는 마군 1만 명도 함께 배속되었다.
이외에 중군은 명주(溟州)의 대광(大匡) 왕순식(王順式) 등이 지휘하는 마군(馬軍) 2만 명, 유금필(庾黔弼) 등이 지휘하는 흑수(黑水) · 달고(達姑) · 철륵(鐵勒) 등 여러 번(蕃)의 정예 기병 9,500명, 우천군대장군(祐天軍大將軍) 정순(貞順) 등이 거느린 보군(步軍) 1천명, 천무군대장군(天武軍大將軍) 종희(宗熙) 등이 거느린 보군 1천 명, 간천군대장군(杆天軍大將軍) 김극종(金克宗) 등이 거느린 보군 1천 명으로 구성되었다.
좌군에 해당하는 좌강(左綱)은 견훤(甄萱) 등이 지휘하는 마군 1만 명, 지천군대장군(支天軍大將軍) 능달(能達) 등이 지휘하는 보군(步軍) 1만 명으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대장군 공훤(公萱) 등이 거느린 기병 3백 명과 여러 성의 군사 1만 4700명을 원병(援兵)으로 편성하였다.
고려군이 동원한 병력은 후삼국 전쟁 기간 가장 많은 병력이었다. 일리천전투는 고려군의 공세로 시작되었으며, 고려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후백제군 3,200명이 포로가 되었고, 5,700여 명이 전사하였다. 고려군은 패주한 후백제군을 쫓아 황산군(黃山郡)까지 진격하였으며, 결국 신검이 항복함으로써 고려는 후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