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초,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925년(태조 8)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이 되어 후백제(後百濟)의 연산진(燕山鎭)을 공격하여 장군 길환(吉奐)을 죽이고, 같은 해 10월 임존군(任存郡: 현,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을 공격해 군사 3,000여 명을 베었다. 뒤이어 조물성전투(曹物城戰鬪)에서도 태조를 도우면서 견훤(甄萱)과의 협상을 중지하도록 요청하였다.
928년(태조 11)에는 탕정군(湯井郡: 현, 충청남도 아산시)에 성을 쌓고 있다가 후백제 군사가 청주에서 태조를 공격하자 군사를 보내어 이를 쳐부수었고, 독기진(禿歧鎭)까지 추격해 300여 명을 죽이고 포획하였다.
929년(태조 12)에는 견훤이 고창군(古昌郡: 현, 경상북도 안동시)을 포위·공격하자, 그가 태조를 구하기 위해 예안진(禮安鎭)까지 쫓아가서 저수봉(猪首峯)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그는 931년(태조 14) 참소를 입어 곡도(鵠島)로 귀양을 갔지만, 이듬해에 후백제의 해군(海軍) 장수 상애(尙哀) 등이 대우도(大牛島)를 공격하여 약탈하자 곡도와 포을도(包乙島)에서 장정들을 모아서 군대를 조직하고 전함(戰艦)을 수리해 방어하였다. 이에 태조가 감동해 다시 불러들여 중용하였다.
932년(태조 15)에는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이 되어 의성부(義城府)를 지키다가 태조의 명을 받들어 장사(壯士) 80인을 거느리고 사탄(槎灘)으로 달려가서 후백제 총군(統軍) 신검(神劒)의 군대를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하였다. 회군하는 길에 자도(子道)에서 다시 신검의 군대를 만나서 크게 승리하였다. 이때 후백제의 장군 금달(今達)·환궁(奐弓) 등 7인을 사로잡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획하였다.
934년(태조 17)에는 태조가 운주(運州: 현, 충청남도 홍성군)를 칠 때 유금필은 우장군(右將軍)이 되어 수천 명을 거느리고 돌격해 3,000여 명을 살획하였으며, 술사 종훈(宗訓)과 의사 훈겸(訓謙), 용장 상달(尙達)·최필(崔弼) 등을 사로잡았다. 이를 계기로 웅진(熊津: 현, 충청남도 공주시)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에 항복하게 하였다.
935년(태조 18)에는 도통대장군(都統大將軍)이 되어 후백제의 침략으로 6년 동안 막혀 있었던 나주(羅州)를 경략하고 돌아왔다. 이때 후백제에서 아들 신검에 의해 쫓겨난 견훤이 나주로 달아나 고려에 귀부하기를 청하자, 대광(大匡) 만세(萬歲)와 원보(元甫) 향예(香乂) 등과 함께 다시 나주로 가서 견훤을 바닷길로 맞이해 왔다.
또한 936년(태조 19)에는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전투(一利川戰鬪)에서 그는 원윤 관무(官茂)·관헌(官憲) 등과 함께 흑수(黑水)·달고(達姑)·철륵(鐵勒) 등 여러 번(蕃)의 정예 기병 9,500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중군(中軍)의 장수로 활약하면서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금남집(錦南集)』
단행본
-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통일과 후백제』 (서경문화사, 2010)
- 신성재, 『후삼국 통일전쟁사 연구』 (혜안, 2018)
논문
- 김갑동, 「고려의 후삼국통일과 유금필」 (『군사』 69,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8)
- 김명진, 「고려 태조 왕건의 임존군전투와 유금필의 역할」 (『영남학』 82,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2)
- 윤용혁, 「고려통일전쟁기 태조 왕건과 공주·부여」 (『역사와 역사교육』 42, 웅진사학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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