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등의 관직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102년(숙종 7)에 서경(西京)의 부유수(副留守)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때 서경유수부에 소장되어 있는 서적을 검토하여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1106년(예종 1)에 공부상서(工部尙書)로서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에 임명되었으며, 1109년(예종 4)에는 우복야가 되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104년(숙종 9)에 섭공부상서(攝工部尙書)에 임명된 최공익(崔公翊)이라는 인물의 기록이 1건 기재되어 있다. 최공후의 후(詡)자와 최공익의 익(翊)자가 유사하므로, 최공익은 최공후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오기가 정확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만약 최공후가 최공익과 동일인이라면 최공후는 1104년에 섭공부상서로 재직하였던 것이 된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
- 『해동역사(海東繹史)』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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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일에 하사해 준 것에 사례하는 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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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아니한 임금의 맏아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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