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중종반정 때 공로를 세운 정국공신(靖國功臣) 홍경주(洪景舟)의 딸이다.
처음에는 정국공신들의 신분보장을 위하여 정략적인 뜻에 따라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 후궁이 된 뒤에도 왕의 총애를 사서 아버지의 권세를 뒷받침하고 궁중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사건까지도 탐사하여 아버지에게 알림으로써 사전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특히, 훈구파인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새로이 정계에 등장하는 사림파(士林派)의 제거에 앞장섰다. 특히, 혁신정책을 주장하여 위훈삭제(僞勳削除: 거짓 공훈을 들어 공신에 책록된 자들을 가려내어 공신록에서 삭제함)를 고집하면서 전국 사림의 영수가 되어 국가의 기강을 진작시키려는 조광조(趙光祖) 일당 제거의 배후활동에 앞장섰다.
훈구파는 사림파들이 곧고 바르게 행동하면서 정치의 혁신을 추구하고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는 등 제거할 구실을 제공하지 않자 나뭇잎에 ‘走肖爲王(주초위왕)’ 네 글자를 꿀로 써서 벌레가 먹게 해서 모함하는 데 이용하기도 하였다.
1545년(인종 1) 윤여해(尹汝諧)·유희령(柳希令)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대간들로부터 심한 탄핵을 받았으나 선왕의 총애를 생각하여 허락되지 않았다. 소생으로는 금원군 영(錦原君 岭)과 봉성군 완(鳳城君 岏)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