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조양동 선사유적 ( )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 · 석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속초 조양동 유적(束草 朝陽洞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유적분포지/유적분포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92년 10월 10일 지정)
소재지
강원 속초시 조양동 산142번지 외 9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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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와 석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이자 사적이다. 청초호와 경계해 양양과 연결되는 7번 국도변의 서편 구릉 위에 있으며 장방형 집자리 7기와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굽손잡이 그릇과 겹아가리토기가 있다. 이 유물은 남한에서 출토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동북지역 토기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이 유적의 발굴로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기에 있어서 동북지방과 강원도 영동지방간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 · 석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
개설

199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속초시 남쪽에 있는 청초호(靑草湖)와 경계해 양양(襄陽)과 연결되는 7번 국도변의 서편 구릉 위에 위치해 있다. 조양동 일대는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이면서 청초호와 접하고 있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호적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한국토지개발공사는 1990년 조양동 일대 약 13만평을 택지개발지구로 책정하고 이 일대에 대한 형질변경이 불가피하게 되자 1991년 말에 지표조사를 강릉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였다.

발굴조사는 1992년 5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약 70일간에 걸쳐 강릉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팀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 결과, 택지개발지구 내의 동남편 구릉(A)의 경사면에서 장방형 집자리 7기와 북쪽 구릉(B)의 경사면에서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내용

7기의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석기시대빗살무늬토기조각, 청동기시대의 겹아가리〔二重口緣〕토기,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 골아가리무늬토기〔口脣刻目文〕, 붉은간토기〔紅陶〕, 굽손잡이 그릇〔豆形土器〕과 다양한 종류의 석기(돌도끼, 돌검, 반달돌칼, 가락바퀴, 그물추, 화살촉) 등이 있다.

1호 고인돌에서는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부채도끼〔扇形銅斧〕 1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3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굽손잡이 그릇’은 우리나라 동북지방의 신석기시대 말기 유적인 함경북도 무산 호곡동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다. 이 그릇이 남한지방에서 출토되기는 이 곳이 처음이다.

7기의 집자리들은 서로 인접한 곳에 능선의 방향인 동 · 서방향과 나란하게 위치해 있다. 이와 같이 낮은 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집자리를 조성하는 양상은 청동기시대 전기 집자리 유적의 공통되는 특징적 입지조건이다.

바닥의 상면에는 유기물질이 부식된 엷은 층이 퇴적되어 있고, 바닥은 평탄한 암반 위에 2∼5㎝ 두께의 고운 점토를 깔고 단단하게 다졌다. 내부시설로는 화덕자리, 기둥구멍, 저장구덩이, 제습용(除濕用) 홈, 작업대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구멍(柱穴)은 대부분 집자리의 어깨선인 네 벽의 바로 밑에서 확인되었다. 4호 집자리에서는 장축(長軸)의 중심선에서 4개의 기둥자리가 확인된 것으로 보아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추정된다.

내부시설 중 특이한 것은 기둥구멍과 기둥구멍 사이를 연결한 홈이다. 모든 집자리의 바닥에서 발견된 이 홈은 벽 바로 밑에 마련된 것도 있고 벽에서 안쪽으로 좀 떨어져서 기둥구멍과 기둥구멍 사이를 연결한 것도 있으며, 이중으로 두 줄의 홈이 파여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홈의 용도와 기능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홈이 파여진 위치, 바닥의 평면이 대체로 홈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점, 벽체가 결실된 쪽에는 홈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지붕이나 벽체를 통해 스며드는 물기를 제거시키기 위한 제습시설로 추정된다. 그리고 실제로 4호 집자리에서는 이러한 제습용 홈을 집 밖으로 연결한 배수구시설도 발견되었다.

집자리가 발견된 A구릉에서 서쪽으로 약 700m 떨어진 B구릉에서는 2기의 고인돌(1호, 2호)이 발견되었다.

1호 고인돌은 뚜껑돌〔蓋石, 上石〕과 그 밑의 묘곽(墓槨)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고인돌의 묘실(墓室)은 별도의 덮개돌 없이 묘곽의 바로 위에 뚜껑돌을 올려놓고 묘곽의 바닥에는 납작한 할석(15∼25㎝)을 깔았다. 네 벽은 큼직한 할석(37㎝×13㎝×7㎝)을 쌓아서 만든 전형적인 석곽형(石槨形)의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이다.

2호 고인돌은 뚜껑돌이 상실되었고, 묘곽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묘곽의 바닥과 벽에 사용된 돌은 1호와 마찬가지로 자연석과 할석(割石)인 것으로 보아 묘곽의 구조는 같은 형식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토기, 구멍무늬토기와 함께 붉은간토기가 함께 출토되다. 특히, 겹아가리에 구멍무늬 · 빗금무늬 · 골아가리무늬가 장식된 토기가 수적으로도 가장 많을 뿐 아니라 대부분 집자리에서 출토되었다.

이 겹아가리토기는 지금까지 남한지방에서 출토된 예가 극히 드물고, 모양도 불확실해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유적지에서는 동북계 토기(東北系土器)의 모든 장식적 요소가 결합된 특징적인 토기상(土器相)을 나타내어 겹아가리토기가 동북계통의 토기와 관계가 깊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속초 조양동유적의 발굴로 남한지방의 민무늬토기 유적에서 나오는 겹아가리토기 중에는 동북계 토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한지방의 민무늬토기문화의 형성에 있어서 강원도 영동지방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북지방의 민무늬토기문화가 남한지방으로 전파되는 경로를 밝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적지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기에 있어서 동북지방과 강원도 영동지방간의 문화교류를 확실하게 입증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청동기문화연구』(윤무병, 예경산업사, 1988)
『한국지석묘연구』(김재원·윤무병, 국립중앙박물관, 1967)
「강원도 영동지방의 무문토기문화」(백홍기, 『강원도 영동지방의 선사문화』 2, 문화재연구소·강릉대학교박물관, 1992)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백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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