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 혁명열사릉 ( )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
정치·법제
유적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 관련된 항일운동가들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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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해방 이후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 관련된 항일운동가들의 묘역.
개설

항일혁명열사릉은 김일성 주석의 첫째 부인이었던 김정숙을 위시하여 김책 전 부수상, 김일 전 부주석,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 등 과거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거나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를 맺고 활동한 항일혁명렬사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묘역이다.

역사적 변천

대성산혁명열사릉은 김일성의 발기로 평양의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북한의 조선로동당 창건 30돌을 맞는 1975년 10월 13일 완공되었다. 이후 조선로동당 40돌을 맞는 1985년 10월에 재건 확장되었다.

내용

김일성의 첫 부인이었던 김정숙을 비롯하여 김책 전 부수상, 김일 전 부주석,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 등 과거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활동을 했거나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를 맺고 활동한 ‘항일혁명열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대성산혁명열사릉은 노동당 창건 30주년을 맞이하여 1975년 10월 13에 건립되고, 노동당 창건 40주년을 맞는 1985년 10월에 재건 확장된 것으로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산 주작봉 마루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김일성은 해방 후 자기 동지들의 묘소를 직접 잡아주었으며, 1954년 4월 5일대성산에 혁명열사릉을 건립하여 집중 안치하도록 조치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혁명열사릉에 대하여 “항일혁명선렬들을 영생의 모습으로 내세우며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 나가려는 우리 당과 인민의 확고한 의지를 구현하고 있는 로동당시대의 대기념비”라고 정의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항일혁명열사들에게 돌려준 크나큰 신임의 표시이고 한없는 은정의 선물이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싸운 그들의 투쟁 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의 상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당국은 이 혁명열사릉을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창조물’이라고 선전하며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 귀중한 재부’로 삼고 있다.

혁명열사릉은 총부지면적이 35만㎡에 이르고, 1,800m의 종심에 릉대문, 기념문주, 군상마당과 교양마당, 반신상구역 등의 순서로 꾸려져 있다. 능의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웅장한 대문이 있다. 이 혁명열사릉 대문은 높이 19m, 너비 56.4m의 웅장한 규모이다. 대문에는 김정일의 친필로 씌어진 ‘혁명열사릉’ 현판이 부착돼 있다. 대문은 중심건물과 좌·우 보조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심지붕과 좌·우 날개지붕들 사이의 공간은 배집형으로 된 지붕들로 연결되어 있다. 대문의 중심으로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양쪽 옆으로는 보행이 가능한 인도가 조성되어 있다. 대문을 지나면 400개의 돌계단이 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348개의 계단을 오르면 기념문주가 있다. 높이 8.2m, 너비 3.7m의 이 기념문주는 4각형의 석탑형식으로 계단 양쪽에 있으며, 각 면에는 오각별이 부각되어 있다. 기념문주를 지나 수십 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군상마당에 이르게 된다. 이 마당의 양쪽에는 항일혁명투쟁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조각군상이 배치되어 있다. 조각군상은 군상마당의 좌우측에 방어편과 진군편으로 구분되어 세워져 있으며, 각각 11상으로 형성된 길이 18m, 높이 5.5m의 화강석군상이다. 조각군상 뒷면에는 항일시기에 항일투사들이 나무에 새겨놓았다는 글발과 함께 백두산 밀림이 부각되어 있다. 진군편은 3개의 구성체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항일투쟁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방어편은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혁명사령부를 보위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투쟁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조각군상은 김일성의 영도에 따르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투쟁정신을 형상화하고 있다.

군상마당과 잇닿아 있는 교양마당에는 김일성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으며, 헌시비와 추모군상, 항일혁명열사들의 투쟁업적을 상징하는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가 있다. 김일성의 친필비는 길이 18m, 높이 4.2m, 질량 470t의 화강석 통돌로 되어 있는데,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추모군상은 화환진정대를 향하여 교양마당의 좌우측에 각각 배치되어 있으며, 전투에서 전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과 지하혁명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추모군상은 각각 길이 9.5m, 높이 4.5m이며 5인 군상으로 되어 있다. 화환진정대는 일정한 경사를 이루면서 검은 돌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공화국영웅메달이 길이 4.3m, 너비 2.5m의 크기로 동으로 부각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목란꽃이 장식되어 있다. 화환진정대 앞에는 화환과 꽃다발을 놓을 수 있는 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화환진정대 위쪽에 넓게 전개된 반신상구역에는 항일혁명열사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배경에는 “항일혁명선렬들이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지키고 빛내여 온 조선혁명의 기치, 주체의 기치를 상징하고 있다”는 붉은 깃발이 형상화돼 있다. 붉은 깃발은 혁명열사릉 위쪽 부분에 붉은 화강석으로 길이 22.2m, 높이 11m로 형상되어 있다. 반신상구역에는 120여 명의 항일혁명열사들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반신상은 모두 동으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항일혁명열사들이 서서 평양시의 중심부를 바라보는 형상으로 배열되어 있다. 항일혁명열사들의 반신상은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기본적으로 희생된 연대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제일 높은 지대에 설정된 상단의 중심에는 김일성의 첫 부인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반신상이 자리잡고 있다. 특별히 김정숙과 함께 김 책, 강 건 등 최고 지도부 성원 15명의 반신상은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반신상을 받치는 비석에는 해당 이름과 생년월일, 혁명에 참가한 시기와 사망 연월일 등 간단한 경력이 새겨져 있다.

한편, 혁명열사릉 개관 당시 묻힌 항일유격대 출신자 등 100여 기는 평양의 모란봉과 양강도 혜산의 투사묘지에 묻혀 있던 유해를 이장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항일혁명의 투쟁 경력을 재평가하고, 원로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리두익 전인민군 차수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활동했던 리항만, 허형식, 리동광, 리홍광 등의 유해를 애국열사릉에서 혁명열사릉으로 이장한 바 있다.

특징

대성산혁명열사릉 조성은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실제로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에 대한 혁명전통교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치된 ‘항일혁명열사들’은 모두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묘역에 조성된 각종 구조물에는 이들의 김일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실성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 점에서 혁명열사릉은 북한당국이 주장하듯 ‘혁명전통으로 교양하는 귀중한 재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북한정치사연구』Ⅰ(김광운, 선인, 2003)
『조선대백과사전』24(백과사전출판사, 2001)
『백과전서』3(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
「대성산 혁명열사릉에는 누가 묻혀 있을까」(이주환, 한국역사연구회, http://www.koreanhistory.org/, 제11호, 200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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