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최초의 외방전교회.
개설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첫 번째 시기는 1923년 5월부터 1930년 4월까지로,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시기이다. 1923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하였는데, 점차 은산(殷山), 마산(馬山), 비현(批峴), 중화(中和) 등에도 본당을 신설하였다. 1927년 3월 평양지목구(平讓知牧區)를 설정되고, 19개의 본당에 총 신자수는 17,738명으로 증가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30년 4월부터 1936년 7월까지이다. 모리스(J. E. Morris, 睦治世, 1889∼1987)몬시뇰이 지목구장으로 활동한 시기로, 평양을 중심으로 문서선교, 평신도 쇄신운동 등 다양한 선교정책을 실행에 옮긴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신사참배 문제로 갈등을 빚던 몬시뇰이 평양교구장을 사임한 이후부터 1942년 6월 메리놀회 선교사 전원이 미국으로 강제 송환되기까지이다. 당시 총 51명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21개의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총 신자가 26,424명에 달한 상태였다.
현황
참고문헌
-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진출과 활동」(김수태, 『부산교회사보』 29, 부산교회사연구소, 1999)
- 1930년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선교활동(김수태, 敎會史硏究 第29輯, 한국교회사연구소, 2007)
- 「메리놀회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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