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입헌정체론은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이다. 국헌, 국제, 약헌, 입헌론라고도 한다. 서양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바탕을 둔 근대 입헌 국가를 형성했다. 이러한 서양의 입헌제도에 대해 『만국공법』, 『해국도지』, 『이언』을 통해서 일부 소개되었다. 입헌 정체 논의는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다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탄되면서 중단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여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제가 정착되었다.
정의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 국헌·국제·약헌·입헌론.
개설
연원 및 변천
서구의 정치와 제도는 이미 청의 양무운동시기에 나온 『만국공법(萬國公法)』, 『해국도지(海國圖志)』, 『이언(易言)』을 통해서 일부 소개되었으나 1884년 1월 30일 한성순보(漢城旬報)에 실린 ‘구미입헌정체(歐米立憲政體)’에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구미 각국의 다양한 정치제도에 대해 크게 ‘군민동치(君民同治)’와 ‘합중공화(合衆共和)’로 나눠지며 입법, 행정, 사법 등 3권이 각기 독립되어 있으며, 헌법 제정에 대해 군주가 정하기도 하고, 혹은 군민(君民)이 함께 논의하여 정하기도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세계 최강국인 영국의 헌법 제정을 모범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렇지만 한성순보의 또 다른 논설에서는 서구의 정체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종전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거해서 국가를 통치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지만 헌법 제정이나 서구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후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1889)을 저술하면서 전제 군주제를 대신할 정체로 ‘군민(君民)의 공치(共治)하는 정체’, 즉 입헌군주제를 이상적인 형태로 간주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은 조선왕조의 제반 제도와 법령을 개혁하면서도 헌법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1894년 12월 일본의 강요로 종묘 서고(誓告)와 홍범(洪範) 14조를 반포하였는데, 이는 헌법의 제정 의지를 나타냈다기 보다는 왕권 제한과 개혁의 일반 원칙을 제시한 것이었다. 또 1895년 4월 내각관제를 제정하여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개혁관료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일부에서는 군주권을 약화시켜 공화(共和)로 개혁하려 했다고 비판하였으나 실제 그런 의도는 없었다. 이때까지 조선왕조는 절대군주제였으므로 입헌군주제를 번역한 용어조차 ‘군민공치’나 ‘군민동치’라 하여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용
그렇지만 고종은 자신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여 새로 구성된 중추원을 해산하는 대신에 1899년 6월 법규교정소(法規校正所)를 설치하고 8월 대한국 국제(國制)를 제정하였다. 국제에서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황제의 전제권으로 일치시키는 등 절대 군주의 법적 권한만을 규정하였다. 반면 헌법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삼권 분립 등의 규정은 없었다. 1905년 5월 고종은 형법대전을 반포하기도 하였으나 민법이나 헌법을 더 이상 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1905년 이후 민간에서는 헌법 제정과 정치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헌정연구회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개혁안을 제기하였으며, 『국민수지(國民須知)』, 『헌법요의』, 유치형의 『헌법』을 비롯한 각종 헌법서 등이 간행되었다. 또 대한자강회월보, 태극학보 등 잡지 논설이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연재 기사를 통해서 입헌 정체를 다루었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나 개명유학자들이 이런 논의를 주도하였으나 이미 일본의 보호 지배하에 있었고 1907년 고종이 퇴위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웠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탄됨으로써 입헌 논의는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대한제국의 군주제를 잇는 복벽주의도 있었지만 대동단결선언(1917)을 통해 민주공화제가 정체의 대안으로 제기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였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정체는 민주공화제로 하였으며 인민의 주권과 기본권, 평등권, 인민의 권리와 의무, 의정원과 정부의 수립, 구황실의 우대 등을 규정하였다. 이 임시헌장은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법적 영토적 실효성을 갖기 어려웠으나, 이후 5차례 수정을 가해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이나 임시헌장(1944) 등으로 이어졌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헌법』(김효전, 소화, 2009)
- 『비교헌법사 : 대한민국 입헌주의의 연원』(신우철, 법문사, 2008)
- 『한국 근대 사회와 문화 I』(권태억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한국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왕현종, 역사비평사, 2003)
- 『근대 한국의 국가사상』(김효전, 철학과현실사, 2000)
- 『서양 헌법이론의 기초수용』(김효전, 철학과현실사, 1996)
- 『대한제국기의 정치사상연구』(김도형, 지식산업사, 1994)
-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박찬승, 역사비평사, 1992)
- 『독립협회연구』(신용하, 일조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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