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정체론 ()

근대사
개념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 국헌 · 국제 · 약헌 · 입헌론.
이칭
이칭
국헌(國憲), 국제(國制), 약헌(約憲), 입헌론(立憲論)
정의
근대국가의 수립 이후 주권 국가의 권력 분립이나 권력 통제를 규정하는 정치체제. 국헌 · 국제 · 약헌 · 입헌론.
개설

17∼19세기에 서구 유럽과 미국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바탕을 둔 근대 입헌 국가를 형성시키고 전세계로 확산시켰다. 입헌정체, 혹은 입헌주의는 세계 각국에서 근대 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헌법 원리로서 채택되므로 근대로의 이행 경로에 따라 다양한 입헌 체제를 형성해 왔다. 한국의 경우,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과도 달리 독특한 입헌정체 수립 과정을 겪었다.

연원 및 변천

19세기 중반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서양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서양 선진 제국의 자본과 기술의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각국은 부강의 원천이 서양의 발달된 정치체제에 있다고 보았다. 1876년 개항을 통해 일본과 청, 서양 등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한 조선왕조는 서양의 입헌제도와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서구의 정치와 제도는 이미 청의 양무운동시기에 나온 『만국공법(萬國公法)』, 『해국도지(海國圖志)』, 『이언(易言)』을 통해서 일부 소개되었으나 1884년 1월 30일 한성순보(漢城旬報)에 실린 ‘구미입헌정체(歐米立憲政體)’에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구미 각국의 다양한 정치제도에 대해 크게 ‘군민동치(君民同治)’와 ‘합중공화(合衆共和)’로 나눠지며 입법, 행정, 사법 등 3권이 각기 독립되어 있으며, 헌법 제정에 대해 군주가 정하기도 하고, 혹은 군민(君民)이 함께 논의하여 정하기도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세계 최강국인 영국의 헌법 제정을 모범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렇지만 한성순보의 또 다른 논설에서는 서구의 정체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종전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거해서 국가를 통치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서는 정치개혁을 시도하였지만 헌법 제정이나 서구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후 유길준은 『서유견문(西遊見聞)』(1889)을 저술하면서 전제 군주제를 대신할 정체로 ‘군민(君民)의 공치(共治)하는 정체’, 즉 입헌군주제를 이상적인 형태로 간주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은 조선왕조의 제반 제도와 법령을 개혁하면서도 헌법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1894년 12월 일본의 강요로 종묘 서고(誓告)와 홍범(洪範) 14조를 반포하였는데, 이는 헌법의 제정 의지를 나타냈다기 보다는 왕권 제한과 개혁의 일반 원칙을 제시한 것이었다. 또 1895년 4월 내각관제를 제정하여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개혁관료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일부에서는 군주권을 약화시켜 공화(共和)로 개혁하려 했다고 비판하였으나 실제 그런 의도는 없었다. 이때까지 조선왕조는 절대군주제였으므로 입헌군주제를 번역한 용어조차 ‘군민공치’나 ‘군민동치’라 하여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내용

입헌 정체 논의는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 1897년 3월에 신구 법전의 절충과 법규를 제정하기 위한 기구로 교전소(校典所)가 설치되었다. 10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권력 구조를 개편하려고 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도 자문기관인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하여 황제와 의정부, 의회 등의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민의가 반영된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였다.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를 개최하여 정치 개혁의 지침을 담은 ‘헌의 6조’를 건의하기도 했으나 국정에 반영하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일본에 다녀온 유학생들이 국가 주권이나 흠정(欽定)과 국약(國約) 등 헌법 제정 과정을 자세히 소개할 정도로 입헌에 관한 논의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종은 자신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여 새로 구성된 중추원을 해산하는 대신에 1899년 6월법규교정소(法規校正所)를 설치하고 8월 대한국 국제(國制)를 제정하였다. 국제에서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황제의 전제권으로 일치시키는 등 절대 군주의 법적 권한만을 규정하였다. 반면 헌법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삼권 분립 등의 규정은 없었다. 1905년 5월 고종은 형법대전을 반포하기도 하였으나 민법이나 헌법을 더 이상 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1905년 이후 민간에서는 헌법 제정과 정치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헌정연구회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개혁안을 제기하였으며, 『국민수지(國民須知)』, 『헌법요의』, 유치형의 『헌법』을 비롯한 각종 헌법서 등이 간행되었다. 또 대한자강회월보, 태극학보 등 잡지 논설이나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연재 기사를 통해서 입헌 정체를 다루었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나 개명유학자들이 이런 논의를 주도하였으나 이미 일본의 보호 지배하에 있었고 1907년 고종이 퇴위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웠다.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탄됨으로써 입헌 논의는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대한제국의 군주제를 잇는 복벽주의도 있었지만 대동단결선언(1917)을 통해 민주공화제가 정체의 대안으로 제기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였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정체는 민주공화제로 하였으며 인민의 주권과 기본권, 평등권, 인민의 권리와 의무, 의정원과 정부의 수립, 구황실의 우대 등을 규정하였다. 이 임시헌장은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법적 영토적 실효성을 갖기 어려웠으나, 이후 5차례 수정을 가해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이나 임시헌장(1944) 등으로 이어졌다.

현황

8·15 해방 이후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공화국과 국민 주권과 기본권 보장, 삼권 분립 등 임시헌장의 기본원칙을 모두 수용하였다. 헌법은 국민 주권의 원리와 국민 참정권을 보장하고 삼권분립주의를 채택하여 삼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마련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치주의와 국민 기본권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제헌과정에서 국민의 다수가 참여하지 못하였고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라는 상반된 권력구조의 결합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대통령중심의 장기 집권과 독재의 폐단이 초래되었으며 이후 9차례에 걸쳐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1987년 이후 국민의 국정 참여와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면서 헌법은 실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헌법 제정 논의는 국가의 주권 형태와 정체를 수립하는 과정이었다. 대한제국시기 절대군주제하에서 입헌정체론이 활성화되지 못하여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였으나 3·1운동을 통해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공화제가 정착됨으로써 1948년 제헌 헌법의 기본 틀을 제공하였다. 다만 헌법 개정에서 국민 다수의 참여와 동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과 별도로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향후 남·북의 통일된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입헌 논의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헌법』(김효전, 소화, 2009)
『비교헌법사 : 대한민국 입헌주의의 연원』(신우철, 법문사, 2008)
『한국 근대 사회와 문화 I』(권태억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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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의 국가사상』(김효전, 철학과현실사, 2000)
『서양 헌법이론의 기초수용』(김효전, 철학과현실사, 1996)
『대한제국기의 정치사상연구』(김도형, 지식산업사, 1994)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박찬승, 역사비평사, 1992)
『독립협회연구』(신용하, 일조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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