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광무 3) 7월 10일부터 경운궁 포덕문 안의 서양식 건물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회의를 시작하였다. 실무를 맡은 위원은 각부(各府)와 각부(各部)의 주임관(奏任官) 가운데 4인, 주사는 각부(各府)와 각부(各部) 주사 가운데 6인으로 겸임이었다. 갑오개혁으로 구제도가 폐지되고 신제도가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혼란이 있었으므로 전장(典章)과 법률을 신구(新舊)의 제도를 참작하여 교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7월 13일에는 궁내부 특진관 이종건, 의정부 찬정 이윤용, 중추원 의관 이근명, 비서원 경 박용대를 의정관에 추가로 임명하였는데, 의정관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원로대신이거나 황제와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이에 8월 3일에는 외국인 고문 르 장드르(C.W. LeGendre), 브라운(J. McLeavy Brown), 그레이트하우스(C.R.Greathouse)를 의정관에 임명하여 각국의 사례를 참고하고 새것과 옛것을 서로 참작한다는 취지를 살리고자 하였다.
이들은 앞서 1897년 교전소에도 참여한 인물들이다. 교정소에서 성균관 관제 개정이나 주 · 판임관 시험 및 임명규칙도 개정하라는 조칙을 보면 갑오개혁 이후 신제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다.
8월 17일에는 대한제국의 정체(政體)와 군권(君權)에 대해 명백히 밝히는 국제(國制)를 제정하라는 조칙에 따라 「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상주하였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바로 반포하였다. 총 9조로 이루어진 「대한국국제」는 대한제국이 자주독립의 근대 주권 국가임을 천명하고, 황제의 절대군주권의 내용을 공법(公法)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였다. 법규교정소는 이후에도 1901년까지 활동하다가 1902년(광무 6) 3월 16일 의정부에 합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