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박물관은 수령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역사’와 ‘혁명업적’과 관련한 자료들을 통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김 부자(父子)의 혁명사상과 영도의 현명성, 공산주의적 덕성으로 교양함으로써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데 적극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김 부자의 우상화와 수령절대주의 강화를 위한 역사 날조의 온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조선혁명박물관 건물은 그 전면에 김일성 동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만수대기념비가 서 있으며, 총 부지면적 24만㎡, 건평 5만3천700여 ㎡, 진열 총연장 길이 4천5백m로 90여 개의 진열전시실들이 있다. 이 박물관은 김일성의 혁명투쟁과정을 선전하는 전시물을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징인데, 혁명박물관 앞에는 건물 앞 벽에 천연색 화강석을 붙여 형상화한 백두산 벽화(길이 70m, 높이 12.85m)를 배경으로 하여 김일성 동상이 서 있으며, 이 동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는 김일성의 ‘혁명역사’와 ‘혁명업적’을 나타내는 두 개의 탑군상(塔群像)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혁명박물관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보천보전투를 형상화한 대형반경화 전시실과 6·25전쟁 시기의 1211고지전투를 재현한 대형반경화 전시실이 있다. 혁명박물관의 전시품의 총연장 길이는 4.5㎞에 달하며, 총서관과 90여개의 진열실이 구비되어 있다. 전시실은 ‘항일혁명투쟁시기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시기 및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첫 시기관’, ‘조국해방전쟁시기관’,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위한 투쟁시기관’,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을 위한 투쟁시기관’,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시기관’ 등 혁명과 건설의 매 시기별 진열실들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관’, ‘총련관’, ‘수령님과 전우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8년 8월 1일에 ‘국립민족해방투쟁박물관’의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60년 8월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과 1950년에는 여러 차례의 사진전람회를 진행한 바 있으며, 6·25전쟁 시기에는 혁명사적물과 자료들을 안전한 곳으로 소개하였고, 1951년과 1952년 전쟁 시기 중에도 평양시를 비롯하여 평안남도와 개성시 일대에서 이동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53년에 항일 시기 혁명사적물과 유물 및 문건자료들을 새로 발굴 수집하여 첫 개관을 위한 준비를 하였으며, 1955년 8월에 개관식이 진행되었다. 당시 혁명박물관에는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역사적 시기를 포괄하는 1,800여 점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59년에는 전국적인 ‘혁명역사자료발굴수집사업’을 통하여 물질적 및 자료적 토대를 정비 보강하였다. 이후 1961년 1월에 김일성광장의 동쪽지역에 연건평 1만여㎡의 청사(오늘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 건물)에 박물관이 새로 꾸려져 개관되었다. 당시 혁명박물관에는 1860년대 시기부터 1945년까지 시기를 포괄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1968에는 정부수립 20주년을 계기로 전반적인 진열개편사업을 통하여 진열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운다는 명분하에 전시체계와 진열내용을 더욱 보충완비하였다. 만수대 언덕 위에 새로 지어진 지금의 건물은 1972년 4월 24일에 개관되었는데, 이는 4월 25일 김일성 탄생 60돌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2017년 3월 30일 조선혁명박물관은 개보수 작업을 거쳐 재개관되었다.
북한은 조선혁명박물관과 관련하여 과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오늘의 사회주의 건설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운동이 이룬 전통과 업적을 계승·발전시키며 한반도에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여야 할 임무가 부여되어 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상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독재정치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