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청룡사의 창건 및 경영 등과 관련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위전비이다. ‘위전(位田)’이란 사찰이나 관청, 학교 등의 경영에 필요한 토지를 말한다. 현재 머리 부분의 옥개석이 일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한 도승(道僧)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나다가 공중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주변 산세를 살피니 풍수지리설상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길지였으므로,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짓고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1392년(태조 1)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가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가 절을 중창하도록 명하였다. 이후 1665년(현종 6)에 중수되었으나, 조선 말기에 판서 민대룡(閔大龍)이 소실의 묘를 쓰려고 승려를 매수하여 절을 소각시켰다. 1921년 승려 혜종(惠宗)이 옛 건물을 이용해 절터 북쪽에 절을 복원하였으며, 1959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문화유산으로 청룡사지 보각국사탑(국보, 1979년 지정)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1979년 지정), 청룡사 보각국사탑비(보물, 1979년 지정) 등이 유명하다. 권근(權近)의 비문이 남아 있으며, 적운당(跡雲堂) 사리탑과 위전비 등이 전해진다.
전체 높이가 2m가 넘는 대형 사면비로, 비신의 높이는 140㎝, 너비는 69㎝, 두께는 23㎝이다. 이 비의 받침돌은 거북 모양이고 머리 부분은 탑의 옥개석 형태로 되어 있으며 그 마루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위전비는 1692년(숙종 18) 청룡사의 경영 등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로, 조선 초 보각국사 이후의 사실을 이 비의 내용으로써 짐작할 수 있다. 비에는 통정대부 숭휘(崇徽)가 비를 세운 대표자로 기록되어 있고, 기타 시주한 여러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이 적혀 있다. 또한 2~3차에 걸쳐 추가로 기록된 부분도 있어 청룡사가 몇 차례에 걸쳐 보수,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사원경제 분야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비석으로, 당시의 사찰경영을 위한 경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금석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