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있는 조선후기 청룡사 경영에 필요한 토지 기능 관련 비. 위전비.
개설
청룡사는 고려시대에 한 도승(道僧)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나다가 공중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주변 산세를 살피니 풍수지리설상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길지였으므로,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짓고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1392년(태조 1)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가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가 절을 중창하도록 명하였다. 이후 1665년(현종 6)에 중수되었으나, 조선 말기에 판서 민대룡(閔大龍)이 소실의 묘를 쓰려고 승려를 매수하여 절을 소각시켰다. 1921년 승려 혜종(惠宗)이 옛 건물을 이용해 절터 북쪽에 절을 복원하였으며, 1959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문화유산으로 청룡사지 보각국사탑(국보, 1979년 지정)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1979년 지정), 청룡사 보각국사탑비(보물, 1979년 지정) 등이 유명하다. 권근(權近)의 비문이 남아 있으며, 적운당(跡雲堂) 사리탑과 위전비 등이 전해진다.
내용
이 위전비는 1692년(숙종 18) 청룡사의 경영 등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전답을 기증한 내용을 적은 비로, 조선 초 보각국사 이후의 사실을 이 비의 내용으로써 짐작할 수 있다. 비에는 통정대부 숭휘(崇徽)가 비를 세운 대표자로 기록되어 있고, 기타 시주한 여러 신도들의 이름과 품목 및 수량이 적혀 있다. 또한 2~3차에 걸쳐 추가로 기록된 부분도 있어 청룡사가 몇 차례에 걸쳐 보수,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사지』(충청북도, 1982)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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