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춘당(春堂). 본명은 순녀(順女).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해 김녹주에게 소고춤을, 전라도 전두영에게 구음을, 정정렬, 유성준, 이선유에게 판소리를, 이순근, 김종기에게 기악을, 최완자(崔完子, 1884∼1969)에게 입춤, 굿거리, 검무를 배웠고, 일제강점기 후반의 진주권번과 교방예술을 보았다.
광복 전까지 활동을 하다가 결혼 후 중단하였으나, 1946년 논개비 건립 모금을 위한 창극 「대춘향전」에서 다시 무대에 섰고, 1949년 1회 진주개천예술제에 출연하였다. 1964년 무형문화재제도가 시작되며 이윤례, 이음전, 최예분, 강귀례 등과 함께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69년 목포 유달국악원, 1971년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가르쳤고, 1973년에 진주민속예술원을 설립했다. 경상대학교, 진주시립국악원, 진주교대 등에서도 가르쳤다.
1983년 한국명무전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추었는데, 최완자와 김녹주에게 배운 춤을 김수악이 재구성한 춤이다. 「진주교방굿거리춤」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1997년에 지정되었다. 개천예술제에서 매년 추었던 「논개살풀이춤」도 교방춤에 남해안별신굿의 춤가락을 결합한 작품이다. 김수악의 구음은 ‘헛간의 도리깨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할 정도로 구성지고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받았다.
1995년 34회 경상남도 문화상, 1985년 진주시문화상, 1981년 대한민국사회교육문화상 금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1주기 추모공연(국립국악원 예악당)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