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중일전쟁을 국가총력전으로 강행하면서 국내외 반전의식과 투쟁 가능성을 차단하고 본격적으로 조선민중의 정신과 사상을 통제하고 전시동원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이 같은 정책의 중심으로서 기존 관제 동원정책이던 농촌진흥운동과 심전(心田)개발운동을 흡수하여 전개되었다.
일제는 중일전쟁 발발을 계기로 국민정신총동원운동(1938.7.7∼1940.10.16)을 주도하는 전국적인 관변단체로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을 설치했다. 그리하여 총독→조선연맹→도연맹 이하 부락연맹→애국반→개인으로 이어지는 통제망을 가동시켜 내선일체와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꾀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조선민중의 내면세계를 일본정신〔천황중심주의〕으로 개조하여, 이에 기초한 일본어 상용화, 창씨개명, 신사참배, 황민화교육, 지원병제도 등 일련의 황민화정책을 보편화시켰고, 식량대책과 군수생산 등 전시동원의 한 축을 담당했다. 또한 이를 위한 기초적 훈련으로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 궁성요배 등의 간단한 의식과 실행 사항을 매일 아침 혹은 작업 전후, 매달 애국일 그리고 경제전강조주간 등과 같은 시국 행사에 삽입했다. 이로써 조선민중의 일상생활 전반을 통제하면서 전시 동원 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1930년대 말 황국신민화 정책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조선민중의 정신과 사상을 일본정신과 일본적 정서로 전환시키려는 공작은 용이하지 않았다. 이 시기 조선민중들이 부분적으로 체제에 편입되거나 거부하는 행동양식의 저변에는 고단하고 암담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일제의 폭력성과 그 심각성을 읽고 패망의 필연성을 확신하던 민중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