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양의 사교춤과 민속춤으로 행해진 공연 내지는 회합. 도무회.
연원 및 변천
그러나 무도회가 일반의 문화행사로 널리 행해진 것은 블라디보스톡청년학생음악단의 고국순회공연 이후였다. 이 블라디보스톡 교포 청년학생들이 행한 음악무도회가 문화적 충격을 주었으니, 당시 지식인이었던 학생들이 무대에서 직접 춤추었다는 점과 계몽적 자선적 취지로 무도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춤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후 무도회는 크게 유행했다. 경성의 학교와 교회들은 강연이나 체육 행사에 무도회, 음악무도대회, 음악가극무도회 등을 병행했고, 기금 마련을 위한 무도회도 자주 열렸다. 김동환이 1922년에 6월호 『개벽』에 실은 「무도란 여하(如何)한 것인가」에서 무도를 무대무도와 사교무도로 분류하며, 사교무도는 5, 6개월이면 배울 수 있는 춤이지만 예의작법(禮義作法)을 알아야 하는 춤이라고 설명했다. 무도학원도 생겨서 박시몬, 이병삼이나 러시아 무용수를 초청하여 사교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25년에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체육부에 무도과를 두어 강습회도 개최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 근대 사교무도의 전개양상」(박윤희, 동덕여대박사학위논문, 2016)
- 「외래춤이 우리나라 춤 형성에 미친 영향 연구」(황희정,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논문, 2006)
- 「서양민속춤과 사교춤의 도입과 번성」(유미희, 『춤·지성』 2, 2005)
- 「일제강점기 초반 기생의 창작춤에 관한 연구」(김영희, 『한국음악사학보』 3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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