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모던댄스를 수학 후, 해방 후 서울에서 전위무용을 시도한 신흥무용가이다.
본명은 김해성(金海星)으로 부친이 목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에서 수학했고, 귀국 후 악극단에 관계하고 쑈의 안무도 했다.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무용강습에서 조택원의 조교도 했었다. 해방 후부터 김막인이란 예명으로 활동하여, 1946년 설립된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의 임원이 되었다. 다혈질에 자기세계가 뚜렷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이념 문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했지만, 미군부대에서 근무한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의 동료 이규석과 친했다는 이유로 6‧25전쟁 당시 공산당에게 처형되었다.
해방 후 당시로는 드물게 전위무용을 시도했다. 작품발표회 전에 칼멘다방에서 작품 검토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까지 수차례 발표회를 했다. 작품의 주제는 현실적 과제나 문명의 폐해, 죽음, 운명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고, 전위적이며 즉흥적 작품을 공연했다. 「법을 굴리는 자」는 공연 전 막 뒤에서 춤의 작의(作意)와 내용을 문학적으로 설명한 다음, 무대 하수 쪽에서 판토마임의 동작을 하다가 무대 하수로 퇴장하는 춤이다. 인간이 법을 만들고 그 법에 속박되어 고민하고 뉘우치고 자기분열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또 「전투의 죽음」, 「나는 죽음의 소리를 들었다」에서 팔을 교대로 요동치거나 자루 속에서 꿈틀대는 무기교적 움직임들과 선을 그어놓고 왕래하며 참담한 심정을 표현하였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