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덧널무덤·돌무지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98년에 구어리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에 주택이 조성되면서 고분들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파괴되지 않은 구릉 일대를 대상으로 같은 해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덧널무덤〔木槨墓〕22기,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13기,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3기, 독무덤〔甕棺墓〕2기, 돌덧널무덤〔石槨墓〕2기,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2기 등 45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내용
돌무지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가 4m 이하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 무덤이다. 무덤구덩이 내부에 나무로 덧널〔槨〕을 만든 후, 덧널 내부 바닥은 주검이 놓이는 가운데에는 잔자갈을 깔고, 양 가장자리에는 유물을 부장한 후, 덧널과 무덤구덩이 사이의 공간에 돌을 채우고, 덧널 위에도 돌을 얹은 구조이다. 이 돌무지덧널무덤은 덧널무덤의 뒤를 이어 나타나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유행하였다.
굴식돌방무덤은 천장과 벽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돌방의 평면형태는 네모모양과 횡장방형이 있고, 네모모양은 널길이 가운데 마련되었고, 횡장방형은 왼쪽에 마련되었다. 돌방 평면형태가 횡장방형 돌방은 시신을 놓은 주검받침〔屍床〕의 높이가 30㎝ 이상으로 높고, 2∼3차례의 추가 매장이 되었다. 돌방무덤의조영시기는 7세기 전반경으로 보인다.
덧널무덤과 돌무지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에서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圓底短頸壺〕·화로모양토기·통모양그릇받침·컵모양토기 등의 토기류와 쇠도끼·큰칼·쇠낫·꺽쇠·주조괭이·덩이쇠·판갑옷〔板甲〕·경갑(頸甲)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고분군에서 확인된 이혈 으뜸·딸린덧널식 덧널무덤은 동혈(同穴) 으뜸·딸린덧널식 덧널무덤보다 상위의 무덤유형임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주목되었고, 최근 경주 시내의 월성로와 쪽샘고분군에서 확인된 신라 최고지배층 고분의 무덤유형과 동일하기 때문에 향후 신라의 지배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된다. 또한 시기에 따라 이 고분군의 규모와 껴묻거리의 수량·종류에 변화가 뚜렷하여 신라 중앙세력의 성장에 따라 주변 세력이 쇠퇴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 『경주구어리고분군Ⅰ-적석목곽묘·석실묘-』(재단법인 영남문화재연구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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