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율동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율동고분군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율동고분군은 해발 436m의 벽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북동쪽으로 율동마을과 두대마을 감싸고 있는 해발 305m 야산의 사면 자락에 위치하며, 율동고분군Ⅰ·Ⅱ·Ⅲ의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1998년 태풍 애니로 인한 집중호우로 율동고분군Ⅰ이 심하게 훼손되어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1998년 12월부터 1999년 4월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75기가 확인되었다.

내용

율동고분군은 직경 10m 내외의 봉분이 있는 중형 규모와 봉분이 없는 소형 규모의 고분이 대부분이며, 주요 묘제는 구덩식돌덧널무덤이다. 발굴조사에 의해 일부 확인된 율동고분군은 매장시설이 모두 구덩식돌덧널이고, 등고선 방향을 따라 배치되었는데, 2기 또는 3기가 인접하여 나란하게 배치된 예가 많다. 가까이에 나란하게 배치된 돌덧널에 매장된 사람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돌덧널은 봉분과 둘레돌〔護石〕이 남아 있었다.

돌덧널의 규모는 대개 길이 300㎝, 너비 50∼70㎝, 깊이 80∼100㎝ 내외로 중·소형 무덤이 대부분이다. 돌덧널은 깬돌과 냇돌을 사용하여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섞어 쌓았다. 돌덧널 벽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예는 거의 없고, 대부분 파괴되었다. 돌덧널 상부에 뚜껑돌이 덮였지만, 인위적·자연적 피해를 입어 대부분 없어졌다. 돌덧널 바닥 중앙부에 잔자갈을 깔아 주검받침〔屍床〕으로 이용한 예와 생토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사례가 있는데, 잔자갈을 깐 사례가 대부분이다. 잔자갈을 깐 돌덧널과 그렇지 않는 돌덧널 간에는 규모나 껴묻거리〔副葬品〕의 종류와 수량에 뚜렷한 차이가 나지 않고, 시기 차이도 뚜렷하지 않다.

유물은 양쪽 단벽 가까이의 공간에 부장하였는데, 한쪽은 뚜껑굽다리접시·굽다리주발·뚜껑있는바리〔有蓋鉢〕·짧은목항아리 등 크기가 작은 토기들이 부장되었고, 반대쪽에는 짧은목항아리·굽다리긴목항아리 등 크기가 큰 토기들이 부장된 규칙성이 있다. 바닥에 잔자갈의 받침대 위에서 귀걸이 등 주인공의 신체에 착용한 장신구가 크기가 작은 토기가 부장된 가까운 곳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머리의 방향은 작은 토기가 부장된 방향임을 알 수 있다.

돌덧널에 부장된 유물의 수량과 종류는 돌덧널의 규모에 따라 다른데, 길이가 300㎝ 이상인 돌덧널에는 20∼25여점 내외이다. 도굴의 피해를 받은 돌덧널은 껴묻거리의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원 위치를 벗어나 부장 당시의 매장 모습을 알 수 없다.

출토된 유물은 뚜껑굽다리접시·굽다리접시·굽다리주발·뚜껑·굽다리긴목항아리·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연질옹(軟質甕) 등의 토기류와 손칼·쇠화살촉·쇠투겁창·쇠낫·쇠도끼·쇠끌 등 간단한 철기류가 출토되었고, 일부 돌덧널에는 발걸이와 재갈·띠고리 등 말갖춤〔馬具〕류가 출토되었다. 귀금속의 장신구와 장식 말갖춤 및 장식 큰칼 등 위세를 나타내는 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중·소형 고분으로 이루어진 율동고분군은 5세기 후반∼7세기 전반까지 조영되었는데, 중심연대는 5∼6세기대이며 그 시기 경주 주변부 집단의 위상과 성격을 구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경주 중심지의 특징적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구덩식돌덧널무덤만 확인되어 왕경 중심부 집단과 주변 집단의 매장문화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참고문헌

『경주시 율동 1108번지 고분군 발굴조사 보고서』(한국문화재보호재단·경주시, 2000)
「5∼6세기 경주지역 고분의 위계구조 연구」(이동욱,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집필자
홍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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