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延吉市) 소영향(小營鄕) 소영촌(小營村) 북산(北山)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군이다. 1938년에 일본인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52기의 돌널무덤을 조사하였고, 1949년 이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박물관이 여러 차례 지표 조사하였다. 돌널무덤은 동서 100m 가량의 범위 안에 수백 기가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대체로 동서로 긴 모습인데, 딸린 덧널 없이 돌널을 쌓거나 막돌을 쌓은 구조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 청동기문화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延吉市) 소영향(小營鄕) 소영촌(小營村) 북산(北山)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군.
내용
무덤은 대체로 동서로 긴 모습인데, 딸린 덧널 없이 돌널을 쌓거나 막돌을 쌓은 구조이다. 특히 돌널을 상하 좌우로 잇대어 축조해 놓은 것이 적지 않다. 돌널의 덮개돌은 전형적인 돌널무덤처럼 여러 장을 돌널에 걸쳐 놓은 것도 있지만, 막돌을 쌓아 놓은 돌무지 모습의 것도 적지 않은데, 돌무지의 높이는 대체로 1m 가량 정도된다. 이밖에 석회 암반을 구덩이처럼 판 뒤 무덤 구덩이 가운데 한쪽을 별도의 시설을 더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널의 한쪽 벽으로 활용한 것도 있다. 돌널의 규모는 대개 길이 1.5∼1.6m, 너비 0.4∼0.5m, 높이 0.25∼0.3m이며, 30호 돌널무덤처럼 최대 길이 2.25m, 너비 0.5m, 높이 0.3m 되는 것도 있다.
장식은 머리 방향 동쪽에 곧게 바로 펴묻기〔仰身直肢〕가 일반적이지만 굽혀묻기〔屈肢葬〕도 얼마간 있다. 매장된 사람 수는 한 사람을 묻은 단인장(單人葬)이 대부분이다. 다만 여러 사람을 합해 묻은 합장(合葬)도 적지 않은데, 2인이 보편적이지만 3∼4인을 합장한 무덤도 확인되었다. 합장의 대상과 방식은 성인이 합장된 예도 있으나, 모자(母子) 각 1인이 합장된 예도 적지 않다. 모자 합장은 같은 돌널 안에 하는 경우와 발치 쪽에 작은 돌널을 덧대어 하는 경우로 나뉜다.
출토 유물로는 돌을 떼거나 갈아서 만든 돌도끼, 석창, 돌살촉, 가락바퀴, 환상석기, 흑요석기 등이 있고, 뼈로 만든 단검, 찌르개, 창머리, 침, 침통, 비녀, 화살촉, 새기개, 돼지이빨 장식 등이 있다. 또한 항아리, 바리, 가락바퀴 등의 토기와 옥으로 만든 고리, 귀걸이 장식, 대롱 등도 확인되었으며, 그밖에 조개 고리와 조개 장식 등도 있다.
특징
해란강∼알하하 유역 돌널무덤의 특수성은 이 지역의 돌널무덤이 길림 일대의 돌널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즉, 소영자 돌널무덤은 석기의 마제(磨製) 기술이 철저하지 못하고 다양한 종류의 흑요석기가 다량으로 부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서기전 10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정시(龍井市) 유정동(柳庭洞) 돌널무덤(용정 유정동 유적)은 고식(古式)의 통처럼 생긴 깊은 바리모양 토기〔深鉢形土器〕를 공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서기전 10세기 전후로 편년된다. 이와 함께 이들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고려할 때, 해란강∼알하하 유역의 돌널무덤은 길림성 중부와는 다른 계통과 맥락을 통해 출현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서단산문화와 길림 지역의 청동기문화』(오강원, 학연문화사, 2008)
- 『延吉市文物志』(延吉市文物志編寫組, 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 『延吉小營子遺址調査報告』(藤田亮策,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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