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계화 대신 ‘계건이(界件伊)’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계화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계화도 간척지는 1965년 섬진강 댐이 완공되어 발생한 2,786세대의 수몰민을 위해 조성된 간척지이다. 계화도는 본래 섬이었으나 계화도와 육지인 부안군 동진면을 잇는 제1방조제(9,254m)가 1966년, 제2방조제(3,556m)가 1968년 완공되면서 육화(陸化)되었다. 그 결과 방조제 안쪽의 간석지(干潟地)가 2,741ha에 이르는 광활한 농경지로 변모하였다. 계화도 간척지는 완공 당시 광복 후에 조성된 최대의 간척지로 우리나라의 식량 증산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한편 제1방조제와 계화도가 맞닿은 곳에는 제1배수갑문(排水閘門)이 설치되고, 갑문 밖으로는 소규모의 어촌이 남게 되었다. 방조제 안쪽에는 기존의 취락인 계상리 · 계중리 · 계하리 등에 이주민을 위한 새로운 주택들이 추가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계화도 간척지 자체는 취락은 물론 한 채의 주택도 없이 수로(水路)와 장방형(長方形)의 농경지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공간으로 구획되었다.
계화도 간척지는 2006년 새만금 간척사업의 일환인 방조제 물막이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바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내륙이 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군산에서 부안을 연결하는 약 33㎞의 방조제를 축조해 4만 100ha의 간척지를 조성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