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서예가 한호가 선조의 명으로 1583년에 간행한 교재. 한자학습서.
내용
『천자문』 앞표지에 “천자문(千字文) 내사(內賜)”라 쓰여 있는데 후대에 개장(改粧)하여 쓴 것으로 여겨진다. 안쪽은 오랜 사용으로 인해 종이가 낡아져 책장을 넘기는 귀퉁이를 종이로 덧대었다. 표지 이면에는 “萬曆十一年七月 日(만력십일년칠월일) 內賜司諫院大司諫朴承任千字文一件(내사사간원대사간박승임천자문일건) 命除謝(명제사) 恩(은) 左副承旨臣(좌부승지신) (수결)”이란 내사 기록이 있고, 첫 면 위쪽에 세로 8㎝, 가로 8.1㎝의 ‘선사지기(宣賜之記)’가 찍혀 있다. 모두 42장으로 각 장 6줄 24자씩 배열했는데, 첫 줄에 ‘천자문’이라 새기고 마지막 줄에 “萬曆十一年正月(만력십일년정월) 日副司果臣韓濩奉(일부사과신한호봉) 敎書(교서)”를 작은 글자로 새겼다. 이로 보아 1583년 정월에 오위(五衛) 소속의 부사과이던 한호가 왕명에 따라 써서 간행되었으며, 그해 7월에 영주 출신의 대사간 박승임에게 내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이 초간본과 같은 판본이 일본 도쿄 국립공문서관(國立公文書館)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어 국어학 분야에서 연구되었다. 특히 초간본과 후대 중간본의 천자문 음훈(音訓)을 대조하여 중세 국어의 변화과정을 밝혔고, 또 초간 이전과 이후의 다른 천자문 간본과 비교하여 석봉천자문이 조선 후기 천자문 계통의 중심이 되었음을 밝혔다.
초간 이후 석봉천자문은 임진왜란을 막 지난 1601년(선조 16) 칠월에 왕실교육용으로 내부(內府)에서 개간되었고, 1690년에는 숙종의 「어제천자문서(御製千字文序)」를 앞쪽에 더해 중간되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새겨져 갑술중간본(甲戌重刊本), 경인중보본(庚寅重補本) 등이 전한다. 이에 따라 이 『천자문』은 조선시대 천자문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전파되면서 초학자의 한자와 글씨 학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에서 국내 유일의 이 초간본은 국어학·서지학·교육사·서예사 분야의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 「원본석봉천자문에 대하여」(조병순, 『서지학』7, 한국서지학회, 1982)
- 「내각문고소장 석봉천자문에 대하여(일)」(안병희, 『서지학』6, 한국서지학회, 1974)
- 「朝鮮板『千字文』の系統」(藤本行夫, 『朝鮮學報』94, 京都: 朝鮮學會,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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