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국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유물 (서울 )

목차
관련 정보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서울 守國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08년 12월 22일 지정)
소재지
서울 은평구 서오릉로23길 8-5, 수국사 (구산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개설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239년경 전후에 조성되었다고 추정되는 목조 아미타불상이다.

내용

다소 건장하게 보이는 이 불좌상은 육계(肉髻)가 큼직한 편인데 중간 계주가 높게 솟아 있으며 나발은 작고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특징은 1274년 중수, 1200년경 전·후작으로 생각되는 개운사목아미타불상과 거의 흡사하며 역시 1200년경 전후의 봉림사목아미타불상 및 1280년경에 중수한 개심사목아미타불좌상과도 친연성이 있으며, 그림으로는 1306년에 제작된 일본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아미타불화와 친연성이 다소 있다. 또한 고려말의 중수기와 조선 전반기의 중수기를 가진 14세기의 불상인 자운사목아미타불상도 이 불상과 친연성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얼굴은 직사각형에 가까운 타원형인데 뺨이 통통하고 양감있는 윤곽은 개운사 아미타상과 유사하고 반쯤 뜬 눈과 도톰한 인중, 양감있는 뺨과 턱은 봉림사 아미타상과 유사한 편이다. 이마가 봉림사 불상처럼 넓지 않으며 작은 백호가 이마 중앙에 있지 않고 눈썹사이에 표현된 것과 코가 긴 것은 개운사 불상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는 개운사 불상 코처럼 코끝이 뾰족한 메부리코가 아니고, 봉림사 불상의 코처럼 코끝이 동글동글하지 않으며 곧고 긴 코와 아담한 코끝 모양은 장곡사 약사불의 코와 친연성이 있다. 이와 유사한 머리와 얼굴형태의 불상은 1313년 작 민천사(旻天寺) 불두(佛頭)이어서 주목된다.

상체(上体)는 당당하면서도 건장한 편이고, 어깨가 팽팽하고 볼록하며 U자형으로 터진 가슴에 둥근 양쪽 젓가슴 사이로 둥근 배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상체는 개운사 아미타불상과 친연성이 짙고 봉림사 아미타불상과는 둥근 배 표현이 없는 점만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있는 하체는 오른발이 왼발 위로 올려진 항마좌의 자세인데 양쪽 무릎이 높고 큼직하며 안쪽으로 각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무릎 형태는 역시 봉림사 불상이나 개운사 불상과 동일한 것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을 하고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위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다.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형태는 고려후기 아미타불상 가운데 고산사 소 아미타불과 심향사(尋香寺)건칠아미타불상 특히 고산사상이 가장 유사하며, 봉림사 불상이나 개운사 불상 등 대부분의 고려 중엽 아미타불상들은 왼손을 가슴아래까지 올려놓고 있어서 드문 수인을 짓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통견의(通肩衣)의 불의는 상의(上衣) 위에 대의(大衣)를 걸친 2중착의법(二重着衣法)인데 오른쪽 어깨 위에 반달형으로 대의가 걸쳐진 점, 왼쪽 어깨의 3가닥 옷주름과 이 옷주름 밑에서 어깨 전체에 걸쳐 내려진 타이트한 10가닥 이상의 옷주름과 이 주름이 팔꿈치 위에서 Ω형을 이룬 주름, 왼 무릎 위에서 아래로 내려진 연잎 모양의 옷자락 등은 12세기 말 13세기 초 불상인 봉림사 불상, 개운사 불상, 심향사 불상과 거의 비슷한 것이어서 중요시 된다.

이 아미타불상은 두 차례 개금 중수한 기록이 복장품에 남아있고 조성관계의 상황도 알 수 있어서 매우 중요시된다. 즉 “一切如來全身舍利宝篋眞言 己亥十月日 侍中 崔宗峻(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 기해십월일 시중 최종준)”이라는 다라니 수십 점인데 기해년 10월에 시중 최종준이 보시했다는 내용이다. 최종준은 1249년에 돌아간 철원 최씨가문의 고관으로서 창건공신인 최준옹의 6대손이자 최유청(崔惟淸)의 손자인데 1201년 문과에 급제한 후 최고 관직인 시중을 역임하였다. 기해년인 1239년에 수국사불상을 조성할 때 대시주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수국사불상은 철원 최씨 가문의 시중 최종준 등이 시주자가 되어 1239년 내지 그 직후에 이 아미타불상을 조성했다고 생각되며, 이렇게 되면 유명한 최영장군 가문의 원불로써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다라니 외에 3종류의 개금발원문(홍무(洪武) 22년 개금기(1389년), 가정(嘉靖) 42년 개금기(1562년)와 발원문), 후령통과 사리, 모시 적삼과 직물 다수, 금박 묵서류, 불교 전적 17종, 다라니 다수 등 수 많은 복장품이 발견되어 복장품 연구에 매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수국사 불상은 현재까지 연대를 알 수 있는 목불상으로는 최고(最古)의 불상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일본 광륭사 목미륵반가사유상, 해인사 목희랑조사상 등의 목불상의 계보를 계승한 최초의 기년명 목불상으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수국사 고려(1239) 목 아미타불좌상의 연구」(문명대, 『미술사학연구』255, 한국미술사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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