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을 형상화한 불상.
개설
구역인 60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盧舍那佛)로 번역되었지만 신역인 80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로 번역되었으므로 원래는 노사나불이나 비로자나불은 동일한 부처님이다.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로 번역하여 주불로 신앙했으며 상은 주로 보관보살형모습으로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8세기 이전에는 노사나불이나 비로자나불이라 하더라도 시무외·여원인을 한 불상이 조성되었지만 밀교 도상의 영향을 받아 8세기부터는 화엄종의 주불로 지권인 보살형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했다. 신라 화엄종에서는 8세기부터 지권인을 한 부처님 모습(佛形)의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9세기부터는 크게 유행했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상은 일반형 수인을 한 불상 이외에 보관 보살형과 불상형의 두 형식이 있는데 신라(화엄종과 선종 등)에서는 불상형을 주로 봉안했다.
내용
766년을 전후하여 조성되기 시작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들은 800년 전후에도 많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9세기 전반기의 불상은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동록 법수사(法水寺)에 봉안되었던 비로자나삼존불이다. 석조의 비로자나불상과 좌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문수·보현보살상 등 전형적인 삼존불로써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상을 계승한 것이다.
9세기 후반기에는 많은 비로자나불상이 조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보림사 철비로자나불상(859년), 동화사 비로자나불상(863년),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865년), 축서사 비로자나불상(867년) 등 기년명 비로자나불상들이 잇달아 조성된다. 보림사 비로자나불상(859년)은 큼직한 철불인데 길고 팽창된 얼굴, 양어깨가 올라갔지만 통견의(通肩衣)를 입은 체구는 어깨를 약간 움츠리는 듯하지만 건장한 편이며 지권인의 두 손은 작은 편이다. 동화사 비로자나불상(863년)은 석불상인데 화려한 삼단대좌와 섬세한 광배를 배경으로 단아하고 갸름한 얼굴, 지권인의 단정한 체구 등에서 통일신라 9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865년)은 철제(鐵製) 3단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 단정한 체구, 평행 계단식 통견의 등의 양식으로 당대의 대표적인 비로자나불상이다. 축서사 비로자나불상(867년)은 부석사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9세기 후반기 불상양식이다. 섬세한 상중하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불상으로 갸름한 얼굴, 단아한 체구, 평행 계단식 불의, 평행 계단식 대의, 옷깃의 꽃무늬 등은 기본적으로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입상으로 된 비로자나불상도 여러 점, 현존하고 있는데 경주 박물관 금동비로자나불입상, 동경국립박물관 금동불입상 등과 대구 청계사 석 비로자나불입상 등이 대표적이다. 보관형 지권인 비로자나불상도 희귀하게 남아 있는데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출토 사리외함 금동판에 새긴 비로자나삼존불상과 수도암 석비로자나불상 등이다.
이외에 지권인이 아닌 비로자나불상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삼국시대는 물론이지만 통일신라 때의 확실한 비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은 동해 삼화사 철비로자나불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화엄종계 불상 조각과 지권인 비로자나불상」(문명대, 『통일신라 불교조각사 연구』상, 예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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