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

목차
관련 정보
회화
개념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준말로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 신사(神似).
이칭
이칭
신사(神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준말로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 신사(神似).
개설

‘전신사조’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동진(東晋)의 인물화가 고개지(顧愷之)이다. 그는 현재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 포함되어 전하는 세 편의 글, 즉 「논화(論畵)」, 「위진승류화찬(魏晉勝流畵贊)」, 그리고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에서 자신의 인물화에 관한 이론을 펼쳤다. 이 가운데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는 도교(道敎)의 신선들이 사는 산의 형태와 신선들의 위치를 정해주는 문자로 이루어진 설계도이다. 그는 전신과 유사한 의미로 ‘신사(神似)’, 즉 ‘정신이 닮음’이라는 말로 초상화에서 그 인물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세계를 제대로 표출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전신(傳神)이나 신사(神似)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관하여 고개지는 ‘이형사신(以形寫神)’, 즉 형체를 제대로 묘사함으로써 정신을 표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물의 얼굴, 그 중에서도 그는 눈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사지가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은 본래 묘처(妙處)와 무관하나, 정신을 전하여 인물을 그리는 것은 바로 아도(阿堵)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아도’란 당시의 방언으로 ‘이것’이라는 뜻이며 이 맥락에서는 눈동자를 가리킨다. 그는 또 “눈동자를 그릴 때 아래 위나 크고 작음, 또는 짙고 엷음을 터럭만큼이라도 잃으면 신기(神氣)가 이와 함께 모두 변하고 만다.”고 하였다.

고개지는 또한 특정 인물의 정신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그 인물화의 특수한 배경을 활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동시대의 유명한 시인 사곤(謝鯤)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를 언덕과 계곡사이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 그 한 예이다. 사곤이 평소에 “관복을 입고 조정에 나가 백관의 모범이 되는 데는 유량(庾亮)을 따를 수 없으나 속세를 떠나 언덕과 계곡에서 은일(隱逸)하는 것은 내가 그보다 낫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현재 원나라 문인화가 조맹부(趙孟頫)가 고개지의 작품을 기초하여 그렸다는 「사유여구학도권 (謝幼輿丘壑圖卷)」(미국 프린스턴대학교박물관 소장)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북송대의 화론에서도 여전히 신사(神似)는 가장 중요한 회화비평 기준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며 문인화 이론이 발달되면서 형사(形似)를 중요시 하지 않는 듯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이 있었기는 하지만 ‘이형사신’의 근간(根幹)은 그대로 유지되어갔다. 즉 전신(傳神)은 형사(形似)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초상화연구: 초상화와 초상화론』(조선미, 문예출판사, 2007)
『중국회화이론사』(갈로/강관식 역, 미진사, 1989)
「동양화론의 이해」(이성미,『미술사 연구』11호, 1997)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