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준말로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 신사(神似).
개설
이처럼 전신(傳神)이나 신사(神似)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관하여 고개지는 ‘이형사신(以形寫神)’, 즉 형체를 제대로 묘사함으로써 정신을 표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물의 얼굴, 그 중에서도 그는 눈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사지가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은 본래 묘처(妙處)와 무관하나, 정신을 전하여 인물을 그리는 것은 바로 아도(阿堵)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아도’란 당시의 방언으로 ‘이것’이라는 뜻이며 이 맥락에서는 눈동자를 가리킨다. 그는 또 “눈동자를 그릴 때 아래 위나 크고 작음, 또는 짙고 엷음을 터럭만큼이라도 잃으면 신기(神氣)가 이와 함께 모두 변하고 만다.”고 하였다.
고개지는 또한 특정 인물의 정신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그 인물화의 특수한 배경을 활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동시대의 유명한 시인 사곤(謝鯤)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를 언덕과 계곡사이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 그 한 예이다. 사곤이 평소에 “관복을 입고 조정에 나가 백관의 모범이 되는 데는 유량(庾亮)을 따를 수 없으나 속세를 떠나 언덕과 계곡에서 은일(隱逸)하는 것은 내가 그보다 낫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현재 원나라 문인화가 조맹부(趙孟頫)가 고개지의 작품을 기초하여 그렸다는 「사유여구학도권 (謝幼輿丘壑圖卷)」(미국 프린스턴대학교박물관 소장)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초상화연구: 초상화와 초상화론』(조선미, 문예출판사, 2007)
- 『중국회화이론사』(갈로/강관식 역, 미진사, 1989)
- 「동양화론의 이해」(이성미,『미술사 연구』11호, 199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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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남북조 시대에, 진나라 멸망 후 왕족 사마예가 317년에 지금의 난징(南京)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 공제(恭帝) 때인 420년 가신(家臣) 유유(劉裕)에게 멸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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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국 동진(東晉)의 문인ㆍ화가(?~?). 자는 장강(長康). 육조(六朝)의 삼대가(三大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상화와 옛 인물을 잘 그렸으며, 대상이 지니고 있는 생명 또는 정신의 표현을 중시하였다. 작품에 <여사잠도(女史箴圖)>, 화론(畫論)에 <화운대산기(畫雲臺山記)#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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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세상을 피하여 숨음. 또는 그런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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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1271년에 몽고 제국의 제5대 황제 쿠빌라이가 대도(大都)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몽고, 티베트를 영유하여 몽고 지상주의 입장에서 민족적 신분제를 세웠으나 1368년에 주원장을 중심으로 한 한족의 봉기로 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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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중국 원나라의 화가ㆍ서예가ㆍ문인(1254~1322). 자는 자앙(子昂). 호는 집현(集賢)ㆍ송설도인(松雪道人). 서화와 시문에 뛰어나서 원나라의 사대가(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에 ≪상서주(尙書注)≫, ≪송설재집(松雪齋集)≫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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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중국에서, 960년에 조광윤이 카이펑(開封)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 1127년에 금(金)의 침입을 받아 정강의 변으로 서울을 강남(江南)의 임안(臨安)으로 옮길 때까지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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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형체가 서로 비슷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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