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시화일률은 시와 그림의 창작 원리와 경지가 같다고 하는 문예론이다. 북송의 소식이 ‘시 속에 그림’, ‘그림 속에 시’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화일률은 고려 중기에 문인화론과 문인화가의 대두와 더불어 전개된다. 이후 시화일률은 시와 그림이 융합되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창작론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는 문인화론의 핵심을 이루면서 비평의 기준이 되었다. 고려 후기 이인로는 그림을 소리 없는 시, 시를 소리 있는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문예론은 그림을 시와 동질적 창작 매체로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의
시와 그림의 창작 원리와 경지가 같다고 하는 문예론. 시화일치·시화합일.
개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에 문인화론과 문인화가의 대두와 더불어 전개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는 화원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 말기 여항문인화가들에 의해 더욱 심화되며 성행되었다.
내용
고려 후기의 이인로(李仁老)는 “시와 그림이 오묘함에서 서로 근원이 같아 일률이라 하고 옛사람은 그림을 소리 없는 시, 시를 소리 있는 그림이라 했으니, 물상을 모사하여 하늘의 비밀을 나누어 내는 기술이 서로 기약하지 않아도 같기 때문이다(詩與畫妙處相資 號爲一律 古之人 以畫爲無聲詩 以詩爲有韻畫 蓋模寫物象 披割天慳 其術固不期而相同也)”고 했으며, 조선 초의 성간(成侃)은 “그림과 시는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전혀 가릴 수 없다(詩畵爲一致 輕重未可分毫釐)”고 하였다. 조희룡(趙熙龍)을 비롯한 조선 말기의 여항문인화가들은 시와 그림은 같은 이치와 하나의 법으로 이룩되며, 시는 그림으로 참여하고 그림은 시로 참여하는 것이기에 서로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시화의 융합을 절대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시대 회화사론』(홍선표, 문예출판사, 1999)
- 『조선시대 화론 연구』(유홍준, 학고재, 1998)
- 「조선중기 회화관 연구-절파 산수화와 시화합일의 관계를 중심으로」(정혜린,『인문논총』62, 서울대인문학연구원,2009)
- 「‘시중유화, 화중유시’ : 시와 회화의 관계를 중심으로」(김연주,『한국미학예술학회지』14, 한국미학예술학회, 2001)
- 「북송의 시화일률관 연구」(전영숙,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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