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휴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노년에 고향인 안동 풍산을 떠나 독서와 사색을 위해 즐기기 지은 별서로서, 폭포, 계류, 산림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승이다. 김계행은 연산군으로 인하여 정사가 어지럽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남쪽 고향으로 돌아와 송천 가장 깊숙한 계곡에 쌍청헌(雙淸軒)이라는 집을 지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만휴정 옛터이다.
그는 말년에 본제인 묵계서원 부근과 만휴정을 오가며 생활하였다고 한다. 만휴정의 시문, 정자중수기 등에 의하면, 평소 때에는 본제를 안동 풍산에 두고 묵촌 이곳 산속 만휴정을 왕래하였으며, 말년에는 묵촌에 본제를 두고 이곳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휴정은 정자도 아담하지만, 바로 앞에 아름다운 폭포, 가마소가 형성되어있고 넓은 암반 위를 흐르는 자연계류 등은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룸으로써 원림적인 요소가 뛰어난 곳이다. 그 지정 면적은 42,336㎡에 달한다.
만휴정이란 이름은 이돈우(李敦禹)가 지은 “무진년 여름 선생이 조상의 시호를 계승한 때 김맹실, 김사행, 유계호와 더불어 차운하다. (歲戊辰夏先生延諡時與金孟實金士行柳季好謹次板上韻)”라고 하는 시에 “관직을 그만두고 저녁에 물러나 앉았다(休官晩退坐).”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만(晩)’과 ‘휴(休)’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지극한 즐거움을 산수에 부치고, 행함과 그침을 천기에 따르며, 세상 밖에서 노닐며 세상사를 뜬구름처럼 가벼이 보았다.”는 보백당의 맑고 깨끗한 경지를 상상할 수 있는 명칭이다.
만휴정의 담장 내에는 매실, 감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고 담장 밖에는 배롱나무, 가중나무, 옻나무, 소나무, 오동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만휴정 주변에는 소나무, 노간주나무, 상수리나무, 붉나무, 병꽃나무, 물푸레나무, 산조팝나무 등의 식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숲은 만휴정 앞을 흘러내리는 냇가 양측에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우수하다.
묵계리의 ‘먹메이골, 새파리골, 법박골, 아래골, 분통골, 땅골’이라는 계곡을 흐르는 냇물이 모여 만휴정 앞을 지나 길안천으로 유입된다. 주변의 하천으로는 북서쪽에 위치한 현하리의 현하천, 남서쪽에 위치한 백자리의 백자천이 모여 길안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안동시 길안면의 구성암류는 중생대 백악기의 일직층, 중생대 쥬라기 흑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된다. 만휴정이 위치하고 있는 안동시의 서남지역은 비교적 평탄하나 동북은 산이 험준하여 농경지는 거의가 산간에 위치하며, 풍산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극히 적은 편이다.
만휴정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계곡의 깨끗한 바위와 “보백당만휴정천석”이라고 쓴 암각,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문,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가훈 등은 김계행의 청백리사상을 시대적 교훈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곳이 작정자가 은일하며 자연과 벗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안빈낙도하고픈 사상이 묻어있는 곳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만휴정에는 김양근의 만휴정중수기문(1790)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인들이 쓴 기문이 있으며, 만휴정(晩休亭), 쌍청헌(雙淸軒)등의 현판이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