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일원 ( )

경주 남산 용장사 계곡 전경
경주 남산 용장사 계곡 전경
인문지리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불교 관련 유적이 산재한 산. 사적.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불교 관련 유적이 산재한 산. 사적.
개설

경주시의 남쪽에 솟아오른 산으로, 금오산(金鰲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북쪽에 위치한 금오산과 남쪽에 위치한 고위산(高位山) 사이를 연결하는 산과 계곡 일대를 남산이라고 통칭한다. 금오산의 높이는 466m이고, 고위산의 높이는 495m이다.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지형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약간 남쪽에 치우쳐 산 정상이 자리하고 있다.

경주 남산일원은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구분된다. 동남산 방향은 경사가 급하고 사면의 길이가 짧은 반면, 서남산 방향은 동남산 방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사면의 길이가 길다. 동남산은 가장 긴 봉화곡(烽火谷)이 1.5㎞이고, 서남산의 계곡은 약 2.5㎞이다.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제각기 16개의 계곡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도 2개의 계곡이 있어 남산에는 모두 34개의 계곡이 위치하고 있다. 남산 일원에는 인용사지, 천관사지, 마애조상군, 칠불암 등 신라 불교문화를 나타내는 유적과 유물이 폭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198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내용 및 특징

경주 남산일원은 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장소다. 남산은 마치 불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산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가 신라에서 크게 융성하면서 남산일대는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조형물과 조각이 곳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불교 유물과 유적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산을 경배하는 숭산신앙(崇山信仰)과 암석을 종교적 대상물로 여기는 암석신앙(巖石信仰)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1. 주요 절터
  1. 인용사지(仁容寺址)

왕정골 입구 남천의 남쪽 산기슭에 있다. 통일전쟁 때 화친을 위해 당나라에 갔다가 옥고를 치른 김인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이 절터에는 두 탑의 잔재가 남아있다. 동탑은 첫 층의 옥개석과 탑신이 유실되었으며, 서탑은 탑지만 남아있다.

  1. 천관사지(天官寺址)

도당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유신을 사모했다고 하는 기생 천관(天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현재 절터는 논으로 바뀌었으며, 지대석의 일부와 탑재, 주춧돌 등이 논두렁에 남아 있다.

  1. 석불, 석탑, 석등
  1. 마애조상군(磨崖彫像群)

탑골에 위치한 옥룡암 뒤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암석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암석의 북면, 남면, 동면, 서면 등 사면에 마애상이 조각되어 있다. 바위 북면에는 중앙에 여래상이 있고 양쪽으로 목탑이 서있으며, 서면에는 여래좌상과 비천상이 있다. 남면에는 삼존불이 조각되어 있는데 마모가 심한 상태이며, 동면은 바위가 크게 셋으로 갈라진 상태로서 제일 끝 면에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다.

  1. 석조여래입상과 삼층석탑

마애조상군 남쪽에 불상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불상은 얼굴의 절반 정도가 훼손되었으나, 삼도가 표현된 목과 복부에 늘어뜨린 옷 주름 등이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조각된 입상이다. 마애조상군의 남쪽에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4.5m의 높이를 가진 이 탑은 옥개석의 길이가 짧으며,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칠불암(七佛庵)

동남산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큰 바위에 삼존불과 사방불이 조각되어 있는데, 두 곳에 조각된 불상이 모두 7개이므로 칠불암이라 하였다. 칠불암 마애석불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 신선암마애보살상

칠불암 뒤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의 표면에는 마애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마애보살은 반가상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한쪽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으며 다른 손은 설법인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에 장식된 영락은 어깨부분까지 길게 늘어트린 모습이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 기타
  1. 상서장(上書莊)

왕정골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최치원이 살았던 집이다. 효공왕 때 최치원은 쇠락해가는 신라와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고려 왕건의 기상을 빗대어 ‘계림에는 낙엽이 지고, 송악에는 솔이 푸르다’는 뜻의 글을 올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8대 현종은 최치원이 고려를 건국하는데 정신적으로 크게 기여하였음을 높게 평가하여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위패를 공자묘에 배향하도록 했다. 이후로 최치원의 집을 고려 태조에게 글을 올린 집이라는 뜻의 상서장이라 칭했다고 한다. 건물이 무너진 이곳에 최치원의 후손들이 근세에 건물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봉수대

칠불암 뒤의 능선에서 남쪽으로 200m 쯤 떨어진 봉우리에는 봉화대의 축대와 토대가 허물어진 모습으로 남아있다. 축대의 높이는 1.5m, 길이는 3m 정도이며, 토대는 25m이다. 이 봉수대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와편(瓦片)과 기편(器片)으로 대부분 조선시대의 유물이다. 이 봉수대가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곳이 명활산성, 선도산성과 함께 삼각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신라 때부터 봉화대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주남산 일원에는 이외에도 수많은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 매우 많이 산재해 있다. 최근까지 남산 일원에서는 절터 112곳(암자터 포함), 석불 80채,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의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다. 경주남산 일원은 신라시대 불교문화를 종합하여 보여주는 신라불교의 박물관이라 할 만한 사적이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사적)』(문화재청, 1999)
『경주남산고적』(윤경열, 경주시, 1980)
『신라의 폐사 Ⅱ』(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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