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소련 극동전선군 제팔팔독립보병여단은 1942년 소련 하바롭스크에서 중국 공산당 소속의 동북항일연군 빨치산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창설된 군대이다. 88여단, 88특별저격여단이라고도 한다. 부대의 주요 임무는 소련·만주 국경 지역 정찰이었는데 소규모 빨치산 부대를 창설해 일본과 맞서 싸우는 임무도 주어졌다. 88여단은 조선인이 조선 해방전투에 참여한 근거이며 김일성의 빨치산 투쟁의 한 부분이다. 김일성은 이 부대에서 최용건, 김책, 허형식 등 조선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은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정의
1942년 소련 하바롭스크에서 중국 공산당 소속의 동북항일연군 빨치산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창설된 군대.
부대 창설 배경
1940년 초 항일연군 지도부는 소련 측과의 협의를 통해, 소련령으로 들어가는 부대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후 항일연군은 소련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고, 김일성의 제2방면군(그동안 군제 개편이 되면서 6사는 다시 제2방면군이 되었다)도 소련으로 들어갔다.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으면서도 일본을 견제하고 있던 소련은 자신의 영토에 들어온 항일연군을 적절히 활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이들을 주축으로 한 여단의 창설이 결정되었다.
부대의 편제
소련으로 들어온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590명 정도였고, 이들 중 최소 190여 명은 조선인으로 확인되고 있다. 590여 명 중 197명은 소련군 첩보기관으로 파견되었으며, 다수의 여성대원을 포함한 60여 명은 집단 농장으로 갔고, 12명은 휴양소나 병원으로 보내졌다. 이처럼 다른 기관으로 파견된 이들을 제외한 320여 명이 여단에 편재되었고, 그중 조선인은 약 1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능과 역할
한편 여단 내에도 중국공산당 조직이 가동되고 있었는데, 1945년 7월 말신동북위원회와 조선공작단으로 재편되었다. 조선공작단의 지휘체계는 김일성이 군사정치, 최용건이 당의 영도, 김책이 두 사람을 지원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해방 후 조선에서의 활동에 맞추어졌다.
1945년 8월 9일 소련극동전선군의 전면적인 대일전을 앞두고 여단의 소련국적 대원 344명이 다른 부대로 차출되어 나갔고, 290여 명의 조중 국적의 대원들은 만주지역 정찰업무에 동원되었다. 대일전이 개시되고 난 직후인 8월 11일 여단 주력병력은 참전 대기 명령을 받고 전투준비에 돌입하였지만, 곧이어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실질적인 전투참여는 없었다.
대일전이 종결된 후 여단 병력은 개별적으로 소련군 점령지역의 경무사령부에 배치되었다. 김일성이 이끌고 있던 제1대대 병력도 조선의 38선 이북 각 지역 경무사령부 부사령관 및 고문으로 47명, 통역 15명, 지역방위 및 기타 기관으로 37명이 배치되었다. 여단의 중요 인물들에게 소련은 적기훈장을 비롯해 1급 조국전쟁 훈장, 2급 조국전쟁 훈장, 붉은별 훈장, 용맹 메달, 전투공훈 메달 등을 수여하였다. 김일성은 “1931∼1940년 만주에서 일본 점령자들과의 투쟁에서 빨치산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소속 부대를 전투 작전에 훌륭히 준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여단장 저우바오중, 참모장 쉬린스끼, 부참모장 최용건 등과 함께 최고훈장인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의의와 평가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부대에서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제2로군에서 활동하던 최용건, 제3로군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책과 허형식 등 조선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모두 만나게 되었고, 명실상부한 조선인 대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는 이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끼 저․ 이종석 역, 창작과비평사, 1992)
- 「1940년대 전반 소련군 88독립보병여단 내 김일성 그룹의 동향」(기광서, 『역사와현실』 제28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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