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북인사의 묘 ()

목차
정치·법제
유적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남한 출신 유명 인사 62명이 안치된 묘역.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재북인사의 묘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남한 출신 유명 인사 62명이 안치된 묘역이다. 북한 평양직할시 룡성구역에 조성되었으며, 남한의 정계, 실업계, 사회계, 학계 등의 인사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62명이 안장되어 있다. 묘역에는 미군정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백상규,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현상윤 등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 시기에 납북되거나 월북한 인물로 1956년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 남한 출신의 명망가를 정치적으로 예우하는 차원에서 만든 묘역이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남한 출신 유명 인사 62명이 안치된 묘역.
개설

북한은 남한의 정계, 실업계, 사회계, 학계 등에서 명망이 높았던 인사들로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사망한 62명을 평양시 룡성구역 특설묘역에 안장하였는데, 이를 재북인사의 묘라고 부른다. 묘역에는 미군정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백상규,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현상윤 등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주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로 전쟁 시기에 납북 또는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1956년 7월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 남한 출신의 명망가이면서 북으로 이동하던 중 사망하였거나, 북한에 있는 동안 조선로동당이나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면서 외곽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예우하는 차원에서 만든 묘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키고 서울을 점령하자마자, 남한의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가, 임시정부 요인, 사회단체 대표, 유명 문인 등 명망가들을 소위 ‘모시기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연행하였다. 이들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국회프락치 사건 관련 국회의원들과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김효석처럼 전쟁시기부터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지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민족적이고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소극적으로 북한 정부의 입장을 지지한 경우가 많았다. 정인보, 이광수처럼 북행 중 사망하여 북한에서의 행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 한학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조선왕조실록의 국역 사업 등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조소앙, 안재홍 등 남쪽으로의 송환을 기대하던 임시정부 요인들과 민족주의자들은 1955년부터 남북통일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개시하였다.

1958년 전 연세대 교수이면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냈던 백상규가 위독하자, 북측은 남측에 있던 가족들의 병간호를 한국 정부에 제의하였지만 무산되었다. 곧이어 그가 사망하자 다시 유해의 송환을 제의하였지만 그 역시 무산되었다. 이후 북측은 대대적인 사회장을 치르고 그의 유해를 평양시 룡성구역에 안장하였다. 이후 재북인사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룡성구역에 특설묘지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후 삼석구역과 신미리(형제산구역)에도 재북인사들의 특설묘역이 생겼다. 묘역이 확장된 것은 당시 룡성의 묘역 위로 고압선이 지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1960년대에 진행된 신미리 묘역 조성 때에는 정인보처럼 후퇴시기 사망해 각지에 임시로 매장되었던 명망가들의 유해가 발굴되어 이장되었다. 남북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인 2003년김정일은 재북인사들의 새로운 묘역조성을 지시하였고, 2004년 현재의 룡성구역에 재북인사의 묘가 설치되었다. 새로운 묘역을 조성하면서 신미리에 있던 23기와 룡성구역 룡추동과 삼석구역 정동에 있던 39기의 묘가 한 곳으로 모두 모이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김약수 등 초대 국회의원 16명, 김용무 등 2대 국회의원 18명의 유해를 비롯해 문학인 이광수, 역사학자 정인보 등 총 62명이 안치되어 있다. 전쟁 중 사망한 사람 중에 방응모 등 유해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묘는 설치되지 않았다. 또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류동열, 윤기섭, 오하영, 엄항섭, 최동오 등 지도자급 인사 8명은 국립묘지격인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재북인사의 묘에 안치된 사람들은 모두 선생이라는 호칭이 붙어 있고, 묘비에는 사진을 새겨 넣었다(9명은 사진이 없다). 이름 뒤에는 포상 기록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직함을 적어 넣었다. 그 뒤에 사망한 날, 태어난 날, 태어난 곳을 적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하지 않은 사람들은 생몰일과 태어난 곳만 적혀 있다. 묘역에는 포상기록이 있는 사람부터 제일 앞 열에 묻혀있다. 묘지의 앞 열부터 안장된 사람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강욱중, 리구수, 김옥주, 박윤원, 송호성, 안재홍, 김경배, 정인보, 황윤호, 김병회, 리문원, 배중혁, 원세훈, 김효석, 박렬, 김약수, 박보렴, 백상규, 조헌영, 김칠성, 현상윤, 백관수, 허영호, 리춘호, 류기수, 박철규, 신석빈, 조종승, 리만근, 량재하, 박승호, 명제세, 김종원, 구덕환, 신성균, 신상봉, 설민호, 권태희, 김용무, 김상덕, 리광수, 리상경, 백승일, 박영래, 김장렬, 오정방, 김헌식, 장련송, 김의한, 장현식, 김종선, 김동원, 리종성, 로일환, 정인식, 김려식, 정구홍, 리순택, 김한규, 고명우, 신용훈, 박성우 (이상 62명 표기는 북한식)]

참고문헌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이신철, 역사비평사, 2008)
『압록강변의 겨울』(이태호 저․신경완 증언, 다섯수레, 1992)
「62기 중 안재홍 이광수 김효석 조헌영...등 좌우 인사 39명 묘소 최초 공개 - 평양룡성구역 '재북인사들의 묘' 를 가다」(김지형, 『민족 21』, 2004년 5월호)
「정인보현상윤백관수박열송호성... "누워서도 남쪽하늘만 보십니다" 평양시 신미리 재북통협 특설묘지」(신준영, 『민족 21』, 2002년 7월호)
집필자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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