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극 ()

정치·법제
인물
북한에서, 로동신문사 편집국장,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 외교관 ·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4년 1월 14일
사망 연도
1997년 8월 14일
출생지
함경북도 길주군 남양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에서, 로동신문사 편집국장,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 외교관 · 관료.
개설

현준극은 1924년 함경북도 길주군 남양리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국내와 중국에서 출생년도, 출생지, 한자이름 등이 각각 1922년, 함남 단천, 玄俊極 등 잘못된 정보로 알려져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0년 함경북도 길주군웅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9년부터 서울 경성중등학원과 경신중학교를 다녔다. 1950년 5월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1945년 11월에는 공청 길주군 웅평면위원회 조직부장으로, 1946년 3월부터는 로동신문함경북도 특파기자, 당생활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6․25전쟁 기간 중에는 대구와 안동 방면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였다. 그는 로동신문사 편집원, 편집국장 등을 거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역임하였고, 1966년 10월부터 1977년까지 제7대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직을 수행하였다.

1972년 8월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1979년 6월에는 위원으로 승격)이 되었다. 1972년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제5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77년 제6기 대의원으로 재선출되었고, 같은 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부장이 되었다. 그리고 1986년에는 국제부 부장이 되었다.

1977년 5월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대외문화연락협의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대일관련 업무를 보기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달 일조의원연맹의 초청을 받고, ‘공화국 대의원그룹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7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1976년 12월 만료된 「조일민간무역협정」 및 「조일민간어업협정」의 연장을 목적으로 파견되었다.

1982년 조일의원연맹은 현준극을 다시 한 번 초청하였지만, 일본 정부의 거부로 입국하지 못하였다. 1992년 6월 로동신문사 대표단 단장자격으로 다시 한 번 일본을 방문하였다. 1994년에는 당 대표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였고, 1996년에는 제15차 그리스 공산당 대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80년부터 대남사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1980년 2월부터 8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9차와 10차 회의를 제외한 여덟 차례의 회의에 수석대표로 참석하였다. 곧이어 10월에 열린 남북총리회담 실무접촉에서도 수석대표로 참석하였다.

1989년 10월(1988년 12월부터라는 설도 있음)부터 로동신문사 책임주필에 취임하면서,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1960년부터 기자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1990년 제9기 대의원으로 다시 선임되었다(5기∼9기 대의원).

1994년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장 자리에 올랐고, 같은 해 7월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1997년 2월 황장엽 전 조선로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장에서 해임되었고, 같은 해 8월 대장암으로 사망하였다.

1972년과 1982년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사망 후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참고문헌

『일본의 대북정책(1945-1992)』(신정화, 오름, 2004)
『북한의 주요인물 2004』(통일부, 2004)
『조선대백과사전』24(백과사전출판사 편, 백과사전출판사, 2001)
집필자
이신철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