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부산에서 동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치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 지역이다. 이 곳은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 당시인 1932년 그의 유격대원들과 함께 국내로의 진출을 위해 창설했다는 밀영이다.
북한은 이곳에서 김일성이 1932년부터 1936년 초까지 중국 화룡현 일대에서 활동하던 그의 항일유격대 정치공작요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국내로의 진출방침을 협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밀영에서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무장투쟁노선에 따라 국내에로의 무장투쟁을 확대할 준비를 갖추며, 국내 노동자, 농민들의 투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침 등을 숙고(熟考)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밀영은 확고한 고증(考證) 없이 북한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장, 선전되고 있는 것으로 ‘김일성의 항일혁명활동’을 미화, 찬양하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밀영과 관련하여 북한의 역사학자 이하영은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산전막에서 고립되어 생활하고 있던 사람들의 집터를 북한당국이 조선로동당의 역사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개조, 밀영으로 만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