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했다는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이 창건한 첫 ‘주체적 혁명무력’으로서 ‘항일유격대’였다며, 창건 당시에는 ‘반일인민유격대’로 호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 창설 날짜인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과 관련하여,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고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고 “모든 계급적 압박과 착취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공식 입장에 따른 조선인민혁명군의 결성 과정을 살펴보면, 김일성이 1930년 여름 장춘현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성원회의’(카륜회의)를 소집하여 주체적인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하여, 같은 해 7월 6일 이통현 고유수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첫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고, 이어 1931년 12월 19일의 명월구회의에서는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 전개할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여 상비 혁명무력으로서 반일혁명유격대 창건 방침을 천명하고, 이에 따라 1932년 4월 25일 중국 동북의 안도현 소사하의 무주툰 토기점골 등판에서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원들을 핵심적 골간으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으며, 나아가 항일유격대에 대한 당적 및 정치적 영도를 더욱 강화하고 군사적 지휘 및 관리체계와 후방보장체계를 개편하여 1934년 3월에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이 북한 정부 수립을 앞두고 1948년 2월 8일에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강화 ·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이 1945년 8월 20일 소련의 야영지에서 조선인 간부들에게 새 국가 건설의 3대 과업을 제기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을 북한지역에서의 건당(建黨) · 건국(建國) · 건군(建軍)의 핵심으로 인식, 당과 국가, 군대 창설의 골간으로 삼았다.
북한은 1948년 2월 8일 정권 수립을 앞두고 인민군을 창건하여, 1977년까지 2월 8일을 건군절로 기념해왔으나, 1978년 이후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대대적인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인민군 창건 기념일 날짜를 변경한 이유는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만주 안도현에서 항일빨치산 부대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했고, 이것이 나중에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하여 인민군이 창설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4․25 문화회관, 4․25 체육선수단, 4․25 예술영화촬영소, 4․25 훈련소, 4․25 여관 등 ‘4․25’라는 일자가 들어간 이름이 더러 있는데, 이는 인민군창건일로 지정된 4월 25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김일성의 “세련된 령도와 뜨거운 사랑 속에서 창건 후 빠른 시일 안에 주체의 혁명위업을 확고히 떠메고 나갈 수 있는 믿음직한 혁명적 무장력으로 자라났으며 마침내 겹쌓인 난관과 시련을 용감하게 뚫고 일제를 반대하는 항일혁명전쟁에서 력사적 승리를 쟁취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된 주장은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