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예술선전대는 김일성이 1961년 12월 28일 개최된 전국청년기동선전대 종합공연을 관람한 후 창립을 지시함에 따라 각 공장과 기업소 등 단체별로, 시와 군 등 행정단위별로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군중 속에 기동성 있게 침투해 당 정책을 해설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 나선 근로자들을 고무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선전대는 주로 탄광이나 광산의 지하막장과 공장 및 기업소 등 생산현장에서 다양한 예술 공연과 당 정책 해설 등의 방법으로 활동한다.
북한은 기동예술선전대 조직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각 조직별 또는 계층별 경제선동경연을 개최해 왔는데 1992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전국시·군기동예술선전대 경제선동경연’(1992. 9)과 ‘전국청년기동예술선동대 집중경제선동경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동예술선전대와는 별도로 각 도별로 ‘예술선전대’와 직업총동맹 산하의 ‘노동자예술선전대’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도예술선전대는 1973년 1월 26일 6개년계획(1971∼76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노동의욕을 북돋아 목표달성을 꾀하기 위해 1973년 1월 26일 결성되었다.
기동예술선전대는 초기에는 당 선전선동부에서 직접 관할하다가 “선동대의 활동은 젊은이들의 기동성에 맞게 운영되어야 패기가 있다”는 이유로 1982년에 사로청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이 선전대가 해당 구역에만 출연하는 본위주의가 만연하다는 이유로 다시 당위원회 지도밑에 해당 직맹위원회로 이관되었다.
기동예술선전대의 구성은 대장 1명과 대원 14명, 총 15명이며 손풍금과 하모니카 그 밖의 악기들과 전투적인 소품들을 가지고 작업 전후와 휴식시간을 비롯하여 회의, 강습 등 모임 전후 시간에 약 30분씩 기동적으로 공연활동을 벌이면서 새롭게 제시되는 당의 방침들을 제때에 대중에게 알려주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중을 동원한다. 증언에 따르면, 기동예술선전대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1만여 개의 선전대가 있으며 대원은 15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에도 북한에서는 각지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 경제건설 현장에서는 막바지 경제과업 관철을 위한 기동예술선전대들의 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