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8월 3일김정일은 평양에서 열린 ‘전국경공업제품전시장’을 시찰하면서 각지의 공장 기업소 내에 설치된 가내작업반을 확대 조직하여 부산품과 폐산물을 이용하여 생활필수품을 생산하여 주민들에게 공급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를 계기로 북한 전역에 확산된 증산 노력경쟁 운동이 인민소비품생산운동이다.
1950∼7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실행했던 과도한 중공업우선정책은 경공업과 농업의 붕괴를 유발하였고 인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84년에 김정일이 제시한 것이 ‘인민소비품증산운동’이었다. 유휴 자재나 폐품을 활용해 소비품을 생산하여 이를 각 시(구역), 군의 상업망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공급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증산운동의 지시를 내린 날을 따서 이를 ‘8·3운동’이라고도 하며, 이러한 ‘8·3운동’에 따라 공장의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폐기물과 부산물, 유휴자재를 이용해 만든 생활용품을 ‘8·3인민소비품’이라고 한다.
북한에 따르면, 8·3소비품 생산은 "국가의 큰 투자 없이 광범한 인민들의 지혜와 창발성에 의거해 다종다양한 소비품을 만들어내는 대중 운동"이며, "금속공장, 기계공장 등 경공업 부문이 아닌 단위들에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직장, 작업반이 꾸려져 있다"고 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북한은 이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각 공장, 기업, 협동농장에 ‘생필품 직장’, ‘생필품 작업반’을 조직하였으며, 근로자들은 정상적인 생산 활동 이외에 부산물과 폐산물의 재활용에 주력해야만 했다. 또한 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1989년 전문 4장 17조로 구성된 「8·3민민소비품 생산처리에 관한 규정」을 채택하고, 5장 26조로 구성된 「가내작업반 관리운영 규정」도 제정했다. 그리하여 주민들이 사는 구역마다 가내작업반 관리소가 있으며 동 및 인민반에도 가내작업반이 조직되어 일용잡화를 비롯한 소비품을 생산한다.인민소비품생산운동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었는데, 1994년에는 인민소비품 증산을 독려하는 기록영화인 ‘은을 내는 8월 3일 인민소비품’을 제작해 주민들에게 상영하기도 했다. 2008년의 경우, 8·3소비품의 "가짓수는 해마다 1.2∼1.3배의 수준에서 확대"돼 왔으며 지난해 제품 가짓수는 1984년에 비해 약 19배인 수천 종에 이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참고문헌]
『연합뉴스』(2009.3.1)
『민주조선』(1989.8.11)
『민주조선』(1989.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