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소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시대 수좌, 승통, 대선의 도청 등을 역임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15년(예종 10)
사망 연도
1188년(명종 18) 1월 23일
출생지
수주(水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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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수좌, 승통, 대선의 도청 등을 역임한 승려.
개설

출신지는 수주(水州). 성은 김씨, 이름은 영소(靈炤). 법호는 정각(正覺)·증지(證智). 아버지는 조의대부(朝議大夫) 사천감(司天監)을 지낸 김순영(金純英)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115년(예종 10)에 태어났고, 11세에 영통사(靈通寺) 보소원(普炤院)에 출가하였다. 17세에 국시(國試)에 합격하였고, 21세에 광교사(光敎寺) 주지가 되었다. 32세에 삼중대사(三重大師), 39세에 수좌(首座), 56세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1180년(명종 10)과 1185년(명종 15)에 대선(大選)의 도청(都廳)이 되었고, 1157년(의종 11)부터 1187년(명종 17)까지 32년 동안 흥왕사(興王寺) 홍교원(洪敎院)의 강학주(講學主)가 되어 화엄 장소(章疏)를 강의하였다. 귀신사(歸信寺), 개태사(開泰寺), 해인사(海印寺)에서도 강(講)을 주관하였다. 명종 즉위 후 궁궐에 들어가 강의하였다. 화엄 관련 주석서를 짓고, 경론을 새기고 필사하여 유포하였다. 제자와 문도가 모두 364명에 달하였다.

말년에 영통사 주지를 지냈고, 1188년(명종 18)년 1월 23일 영통사에서 서쪽 벽의 아미타불상을 향해 앉은 채 입적하였다. 향년이 74세, 승랍은 62세였다.

참고문헌

「정각승통영소묘지명(正覺僧統靈炤墓誌銘)」
「화엄종의 계승과 소속사원」(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 일조각,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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