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하루의 밤낮을 오전[신조(晨朝) 또는 일초(日初)], 정오[일중(日中) 또는 오시(午時)], 오후[일몰(日沒) 또는 일후(日後)], 저녁[초야(初夜)], 한밤[중야(中夜)], 새벽[후야(後夜)]의 여섯 때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불교 문헌에는 육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용수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는 "초야 일시에 일체 붓다께 예배하고, 참회·권청·수희·회향해야 하며, 중야·후야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또 일초분·일중분·일후분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菩薩行法經)』에서는 “어떤 중생이 주야(晝夜) 6시로 시방 부처께 예배하고 대승경을 독송하고 제일의의 깊고 깊은 공법(空法)을 생각하면, 잠깐 뒤에 백만억아승지겁 동안의 죄가 제거될 것이다.”라고 하여 육시의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육시의 수행을 육시예불(六時禮佛), 육시행도(六時行道), 육시예참(六時禮懺) 등으로 부른다. 중국에서는 동진(東晋)의 도안(道安, 314~385) 시대부터 육시행도가 보편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 및 정토교(淨土敎) 선도(善導)의 육시예참이 유명하다.
간혹 육시를 항시(恒時)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하루 여섯 번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였다.
한국에서도 불교 수용 이후 일찍부터 육시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 「기이」 태종춘추공조에 “크고 붉은 말이 밤낮 육시에 절을 돌면서 행도하였다[晝夜六時遶寺行道]”는 표현이 있고,, 최치원이 896년(진성왕 10)에 쓴 「숭복사비(崇福寺碑)」에 “창도(唱導)함에 육시로 옥경(玉磬)이 울리고”라는 표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