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산원(散員)으로서 1224년(고종 11) 7월 상장군(上將軍) 최유공(崔愈恭)과 대장군(大將軍) 이극인(李克仁)이 최우를 암살하려는 거사를 추진하자 이에 동조하였다. 최유공 등의 최우암살모의는 1년 전인 1223년(고종 10) 최유공 등이 개인적 원한이 있던 문신들을 모두 죽이려다 최우에게 발각되어 좌천되거나 유배된 일과 관련된다. 최유공은 당시 좌천된 장군 김계봉(金季鳳), 대장군 이극인과 함께 최우를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최우암살모의에 연관된 이공윤은 그 계급이 산원인 점으로 보아 실무를 책임진 자로 여겨지며, 특히 암살모의에 직접 참여한 산원 박희도와 더불어 행동을 같이 했으리라 짐작된다.
최우를 암살하려던 모의가 발각되자, 최우는 주모자뿐만 아니라 이공윤 등을 제거하였다. 아울러 이들이 속한 당여(黨與) 50여 명을 먼 섬으로 유배보냈다. 1224년 최우암살미수사건의 규모와 그 파장을 통해서 볼 때, 당시 최우정권의 정책에 불만을 지닌 세력이 적지 않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