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서(金應瑞, 1564∼1624)는 무관으로 임진왜란 때 평양방위전과 평양성 탈환에 전과를 올린 인물이다. 김응서집은 16세기 중엽 이전에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응서집은 경사지 위에 ‘日’자형의 평면으로 지어졌으며, ‘ㄷ’자형 행랑채 · ‘一’자형 사랑채 · ‘ㄷ’자형의 안채 · 사당 ·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솟을대문과 안채의 일부만 남아있다.
김응서집은 높은 계단을 올라 9칸 행랑채 왼쪽의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가로로 긴 마당이 있으며, 정면의 높은 터에는 사랑채가 마주하며 오른쪽에 중문간 행랑채가 있었다. 중문간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이다. 중대문을 들어서면 ‘ㄷ’자형의 안채가 나온다. 안채의 정면 왼쪽에 열려 있는 곳으로 나가면 ‘ㄱ’자형 평면의 별채가 있으며, 별채 뒷면 좌측의 높은 터에는 사당이 지어져 있었다. 사랑채의 정면 왼쪽 담장에는 별도의 출입문이 나있었다.
사랑채는 하나로 이어진 긴 툇마루가 달린 평사량 구조로, 대청 공간 없이 6칸 온돌방으로 되어 있었다. 안채는 높은 기단 위에 ‘ㄷ’자형 평면으로 지어졌으며, 안채의 왼쪽에는 부엌이 2칸으로 되어 있었다. 안채의 오른쪽에 연결된 방들에는 김응서 장군이 쓰던 무기들과 목판들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문간 옆에는 행랑방과 마구간 · 곳간들이 있다.
높은 축대 위에 세워진 솟을대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장방형 평면으로 박공지붕이다. 기둥은 원형기둥이며 기둥 상부에는 익공을 사용하여 주택의 격식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준다.
김응서집은 조선 중기의 가옥양식과 건축술을 연구하는데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북한의 국보급 제142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