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동 우물

  • 생활
  • 유적
  • 삼국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우물.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인호
  • 최종수정 2024년 12월 13일
평양 고산동우물 미디어 정보

평양 고산동우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우물.

역사적 변천

고산동우물 내부에서는 고구려의 도기, 기와, 벽돌, 마구, 숫돌 등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유물 중 기와와 벽돌은 고산동우물 부근에 있는 대성산성(大城山城)과 안학궁(安鶴宮)의 출토 유물과 동일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산동우물을 쌓은 시기가 대체로 대성산성과 안학궁의 축조 시기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용

고산동우물의 깊이는 현재 7.5m이다. 고산동우물의 윗부분이 허물어진 것과 지금의 지표에서 1.5m 내려가서 우물의 축석상태가 드러난 모습을 고려한다면 원래 깊이는 9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산동우물은 밑바닥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벽체는 암반 위에 직경 13∼16m의 통나무로 50㎝ 높이의 귀틀을 네모나게 짠 후, 그 밖에 사암질 석재로 쌓았다. 우물 바닥에서 높이 1.7m까지는 한 변 길이가 1.15m 되는 사각벽을 쌓았다. 사각벽 위부터 2.65m 구간까지는 팔각으로 벽을 쌓았으며, 팔각벽 위로는 원통형으로 벽을 쌓은 후 마감하였다. 벽체의 두께는 우물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50㎝로 일정하며, 석재들이 서로 맞물리도록 견고하게 쌓았다.

특징

고산동우물은 사각형, 팔각형, 원통형 등 다양한 모양으로 벽체를 쌓아올린 고구려의 축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의의와 평가

고산동우물은 한반도에서 처음 발굴된 고구려시기의 우물로서 발해시기 우물과 계승관계가 엿보이는 역사유적이다. 북한의 국보급 제172호로 지정 · 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 『조선향토대백과』1(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5)

  • - 『조선유적유물도감』4(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편, 1990)

  • -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배움터(www.nrich.go.kr/studyroom)

  • - 북한문화재자료관(north.nricp.go.kr)

  • -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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