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시랑, 판태복시사,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어사|시랑|판태복시사|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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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시랑, 판태복시사,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고려의 개국공신 권행(權幸)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권수평(權守平)이다. 고종대 대몽외교와 최씨정권의 권력 승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사(御史)로서 1240년(고종 27) 예빈소경(禮賓少卿) 송언기(宋彦琦)와 함께 몽고에 다녀왔다. 1247년(고종 34) 당시 집권자였던 최우(崔瑀)가 아들 최만전(崔萬全)을 승려에서 환속시켜 최항(崔沆)으로 이름을 고치고, 시랑(侍郞)인 권위에게 예의를 가르치게 하였다. 권위로부터 교육받은 최항은 이후 최씨정권의 제3대 무신집권자가 되었다.

1254년(고종 41) 아들인 권단이 젊어서 불교에 심취해 있자 권위는 권단이 출가할 것을 염려하여 문하녹사(門下錄事)의 벼슬을 구해와 취임시킴으로써 가문의 대를 잇도록 하였다.

1255년(고종 42) 최항이 아들 최의(崔竩)에게 권력을 물려줄 때에도 최씨 후계자에게 정치와 예의를 가르쳤다. 이후 최씨집정의 사부로서 추앙받으며 판태복시사(判太僕寺事),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씨족원류(氏族源流)』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강재광, 경인문화사, 2011)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고려묘지명집성』(김용선,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1993)
「최의정권의 대몽화의론 수용과 최씨정권의 붕괴」(강재광, 『한국중세사연구』28, 2010)
「최씨집권기 정권의 기반과 정치운영」(오영선, 『역사와 현실』17, 1995)
「고려 무신정권기의 교정도감」(이정신, 『동서문화연구』6,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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